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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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99 vote 0 2019.10.09 (22:47:14)


    쿨하고 시크하게


    많은 철학자가 있지만 진짜는 데모크리토스와 공자, 니체 정도다. 나머지는 똥이거나 거의 똥에 가깝다. 철학자가 똥이 되는 이유는 자기를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관측대상 그 자체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인간을 개입시킨다. 그래서? 그게 내한테 어떤 이득이 되는데? 이런 식이다. 다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문학을 한다고 치자. 경향파문학이니 프로문학이니 동반자문학이니 순수문학이니 하는 게 나온다. 문학을 왜 하는가? 목적과 의도를 앞세운다는 것은 문학 안에서 고유한 질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즉 그들은 아직 문학을 이해하지도 못한 것이다.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할 말이 없어서 인간의 입장을 내세운다.


    왜 말하는가? 철학가는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남들 앞에서 말을 하지? 언어를 발견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다.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말하려고 들므로 경향이니 프로니 동반자니 순수니 한다. 순수는 보나마나 순수하지 않다. 정치색을 배제하려고 애를 쓰는 그 자체로 불순한 것이다. 진정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데모크리토스는 그 질서를 발견했다. 플라톤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간을 개입시킨다. 인간에게 필요한 게 뭐지? 집단이다. 지도자다. 신이다. 이상이다. 이데아다. 이데아든 이상주의든 신이든 지도자든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동원된 거짓부렁인 거다. 그렇다. 그들은 많이 망가졌다.


    공자는 진실을 말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다. 인간사회에서 그것은 집단에서 권력으로 나타나고 개인에서 매력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본질이다. 니체가 공자의 사상에 근접했다. 그러나 그의 초인개념은 이죽거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공자는 권력 안에서 작동하는 내재적 질서를 보았다. 니체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무엇인가? 노자는 공자에 각을 세우고 대항하려고 했다. 왜?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에 맞선 것과 같다. 내재적 질서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체 엔진으로 가지 못하는 트레일러는 다른 차 뒤에 붙어야 한다. 노자는 공자에 붙어가는 트레일러다.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에 붙어가는 트레일러에 불과하다. 자체동력이 없는 거다.


    니체가 뭔가를 시도했지만 집단의 권력 안에서 통제가능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초인이니 뭐니 개소리를 한다. 웃기셔! 집단의 권력은 원래 위태로운 것이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의 폭주는 무섭다. 검찰 패거리와 기레기를 보면 안다. 그러므로 권력이 없는 원시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노자의 참으로 개똥 같은 소리다. 


    자동차는 무섭다. 마차가 좋지 않겠는가? 이런 소리 하는 자는 쳐죽여야 한다. 언어가 없으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무위자연은 좋은 말이다. 인간에게 권력이 있다면 자연에도 권력이 있지 않을까? 자연의 권력으로 인간의 권력을 통제한다면 좋지 아니한가? 그러나 노자는 깨달음이 없었다. 공자를 엿먹이려고 자연을 끌어들였다.


    공자의 권력에 반대할 의도로 자연의 권력을 내세웠을 뿐 자연의 권력 안에 숨은 질서를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공자를 씹었다. 노자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했고 사회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는 거의 장님과 같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장님이 말한다. 눈 뜨고 보면 세상은 참으로 무서워. 눈감고 살자고.


    니체의 한계는 권력의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 뿐 그 안의 질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차는 봤는데 엔진은 보지 못했다. 차를 타보긴 했는데 운전석에 앉아보지 못했다. 그는 개인의 매력으로 집단의 권력을 꺾으려 했다. 집단의 권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그는 진실을 보지 못했다. 약간 냄새를 맡았을 뿐이다. 


    말하려 했지만 입이 없었기 때문에 한마디도 못 하고 웅얼거리기만 했다. 좋게 해석해 주자면 개인의 매력이 집단의 권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거다. 개인을 집단에 앞세우면 어떤 코미디가 연출되는가? 히틀러 납신다. 내가 바로 그 집단의 권력에 앞서는 매력만점 초인이다. 이런다. 마차가 말을 끌고 가는 격이다.


    진짜는 무엇인가? 자체의 질서를 따라가는 것이다. 결이 있다. 그것을 봐야 한다. 그것을 본 사람이 입을 얻어서 말을 한다. 데모크리토스가 자연의 내재적 질서를 봤고 공자가 사회의 권력적 질서를 봤다. 니체의 아이디어는 집단의 권력은 위태롭지만 개인의 매력은 통제된다는 거다. 검찰이 조국 때려잡듯 잡으면 개인은 통제된다.


    망했다. 사람을 통제하려 드는 것이 실은 통제할 수 없다는 좌절감의 반영인 거다. 질서를 보지 못했으므로 좌절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국민 위에 있을 수 없다. 노무현을 국민 위에 두려는 사람이 있다면 노무현을 이해 못 한 사람이다. 국민이 길을 만들고 노무현이 그 길을 간 것이다. 개인을 집단 위에 두려는 상상이 매우 위험하다. 


    초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초국민이 필요하다. 그것은 조직된 힘을 가진 깨어있는 국민이겠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국민의 권력이 진짜다. 그것이 노무현을 낳는 자궁이다. 우리에게는 노무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낳는 자궁이 필요하다. 자연은 자체의 에너지 질서가 있으니 제 자신을 통제한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사회 역시 권력을 만드는 자체의 질서가 있으며 개인 역시 매력을 만드는 자체의 질서가 있다. 우리는 그 통제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석가는 아이디어가 있지만 똥에 가깝다. 브라만교의 형이상학에 맞서 현실주의를 강조하려 한 것이다. 즉 그는 대적한 것이다. 대적하면 망한다. 게임 상대가 있으면 망한다. 이기려 하면 망한다.


    노자가 망했다. 공자에 대적했기 때문에 망했다. 이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망했다. 데모크리토스에 대적했기 때문에 망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자연에 내재하는 자체의 질서다. 구조론으로 보면 에너지다. 사물을 생성하는 원자가 아니라 사건을 생성하는 닫힌계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사회의 어떤 원자가 된다. 


    자연의 원자는 작고 사회의 원자는 크다. 사회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가족이든 씨족이든 부족이든 민족이든 단위가 있다.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면 사회 역시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를 결합시키는 것이 에너지라면 사회를 결합시키는 것은 이데아다.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를 표절하여 쓸모있는 수단을 만들었다.


    그래서 똥이 되었다. 노자 역시 공자의 위험한 집단적 권력을 해결하는 쓸모있는 논리를 만들어냈으니 그 결과로 똥이 되었다. 석가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역시 똥이 되었다. 이후 철학의 역사는 거의 똥의 역사다. 읽어줄 가치가 있는 문장 한 줄을 쓴 철학자는 없다. 그냥 똥통 속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는 불쌍한 꼴이다.


    그들은 자연과 집단과 개인에 내재하는 질서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의 에너지 질서와 집단의 권력질서와 개인의 매력질서를 통제할 수 있는 핸들과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 페달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기 바빴다. 누가 니 개인사 듣고 싶댔나? 거의 모두 피해 가지 못했다.

    

    초보 영화감독은 자기 경험을 영화로 찍는다. 초보 소설가는 자서전 비슷한 것을 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왜? 문학 안의 내재적 질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감독이 되지 못하고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이효석이나 김유정은 미문을 쓴다. 단어선택이 아름답다.


    교태를 부리고 아부를 한다. 간드러지는 표정이다. 김소월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로 작가는 똥이 된다. 어쨌든 이효석과 김유정은 한글날에 좋은 우리말을 다수 발굴했다. 김소월은 거기에 적절한 라임을 넣어 주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글자놀음에 불과하다. 결정적으로 에너지가 없다는 말이다. 세상과의 싸움을 포기한 거다.


    공자가 세상과 싸울 때 노자가 자연으로 도망쳤듯이 그들은 순수로 도망쳤다. 농민을 계몽하려는 프로문학도 가짜다. 이문열의 자기소개도 가짜다. 문학 안의 질서를 발견하지 못하니 농민계몽에라도 써먹자는 식이라면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니 주차해놓고 토끼장으로 쓰겠다는 식이다. 자연인이 냉장고를 연장통으로 쓰듯이.


    에너지를 끌어내고 마음껏 연주해 보여야 한다. 문학이든 영화든 정치든 음악이든 건축이든 그림이든 마찬가지다. 자체의 결을 드러내야 한다. 엔진과 바퀴가 보여야 한다. 기관차와 객차가 있어야 한다. 내재한 질서를 보여야 한다. 인간의 의도와 목적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쓸모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진짜는 스스로 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10.10 (02:45:39)

"내재한 질서를 보여야 한다. 인간의 의도와 목적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쓸모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http://gujoron.com/xe/113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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