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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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61 vote 0 2019.09.04 (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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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논쟁이 일단락된 듯하니 복기해 보자. 많은 혼란이 있었다. 이런 문제는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의 판단이 서로 충돌하니 아찔한 거다. 가짜 전문가도 나대고 있는 판이다. 필자가 미인도를 진품으로 본 이유는 하나다. 그중 낫기 때문이다. 위작이 진작보다 뛰어나다면 뭐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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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을 보자. 나쁘지 않다. 그런데 아우라가 약하다. 입술이 예쁘다.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듯하다. 턱선도 예쁘다. 머리의 꽃장식이 둥글둥글 원만하다. 날카로움을 많이 죽여놔서 귀엽다. 예뻐서 쌍꺼풀이 더 어울릴 듯하다. 배경의 화투장 같은 붉은 색은 일본그림을 연상시킨다. 천경자 그림은 눈썹이 없어야 제맛이다.


    눈썹이 살짝 있는 듯해서 무섭지 않다. 미인도를 보자. 입술이 비뚤어져 있다. 턱도 비뚤어져 있다. 화난 듯하다. 눈썹이 없는 데다 눈동자의 검은 부분이 없어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머리에 쓴 화관이 강렬해서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킨다. 눈이 무서운 사람은 김완선이다. 사자의 갈기 같은 김완선의 데뷔시절 머리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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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입술을 약간 내민 것이 화가 나 있는 듯하다. 김완선이 일부러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이다. 왜? 사진가들이 요청하잖아. 아까 그 포즈 좋았는데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이러면 자세 잡아줘야 한다. 여러 장 찍어보고 느낌 살아있는 사진을 고른다. 마찬가지로 화가도 같은 그림을 여러 번 그려보고 그중에 잘된 것을 채택한다. 


    미인도는 무서운 눈을 강조하고 있다. 얼굴화장을 해도 한 부분을 강조하고 다른 부분은 죽여놔야 하는데 이곳저곳을 두루 강조해 놓으면 중국 관광객이냐? 종편에 나오는 탈북여성이냐? 하고 오해한다. 유튜브 개인방송으로 뜬 탈북여성이 있는가 본데 일부러 화장을 촌스럽게 한다. 북한여성=촌스럽다는 이미지를 판매한다.


    남한의 관객들에게 너희들 우월감 느꼈지? 돈 내! 이러는 게 나름 집금기술이 된다. 미학이란 것은 하나의 방향을 정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서 그 방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를 도출해 보이는 것이다. 그 안에 방정식이 있다. 소실점이 있다. 닫힌계가 만들어져 있다. 이우환 화백이 점 하나를 찍는다 해도 그러하다.


    도무지 이 이상의 점은 찍을 수 없다는 식으로 하나의 완강한 점을 찍어야 하는 것이며 그 점은 극한의 점이어야 한다. 거기서 맥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냥 종이에 점 하나 찍어놓고 '돈 내!' 이러면 곤란하다. 누가 점 하나 보고 돈 내겠는가? 일관되게 밀고 가는 방향성이 보여야 한다. 원본이 복제본을 낳는 구조가 보여야 한다. 


    천경자의 그림에서 그것은 레이저 눈빛이다. 그 효과를 위해서 석채화라는 특별한 기술을 쓴 것이고 다른 안료로는 도달이 불가능하다. 반드시 그 안료에 그 기법에 그 구도에 그 명암에 그 형태여야만 한다. 마침내 하나의 극단적 일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낳음의 일 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일원론이 된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印象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밀었는데다 눈동자의 검은 부분이 없는 데다 얼굴색이 잿빛이니 인상을 극한으로 쓰고 있다. 게다가 머리칼은 사방으로 뻗어나는 화관을 써서 사자의 갈기모양이다. 자다가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운 것이 인상이다. 김완선이 그저 떴겠는가?


    천경자의 다른 그림은 좋지 않다. 후기로 갈수록 코를 강조해서 산만하다. 극한을 찍었기 때문에 맥락이 단절되어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이다. 이런 것은 그림의 소실점처럼 그냥 보면 보이는 건데 보이지 않는 분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림의 가치에는 전문가의 판단, 시대의 트렌드, 대중의 취향 등의 여러 요소가 합쳐져 있다. 


    천경자의 미인도는 대중이나 평단이나 모두 인정하는 즉 논란이 일어날 수 없는 작품이다. 눈이 무서워서 그냥 쳐다보게 된다. 다만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625를 거치며 70년대까지 나온 많은 한국 그림과 문학에 그런 어두운 분위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박수근 그림의 음울한 분위기다. 


    까마귀가 울고 해가 기울고 어디서 개가 짖고 날은 어슴푸레한데 쓸쓸한 느낌 있잖은가? 영자의 전성시대 하며 70년대 호스티스 영화 분위기 말이다. 60년대 영화는 죄다 신파고 70년대는 죄다 호스티스다. 거기에 고유한 맥락이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맥락을 존중해야 한다. 당시는 그랬다. 당시에 왜 호스티스 영화가 떴을까?


    독재시절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처입은 사람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것이다. 상이군인들이 모여앉아 너는 다리없는 병신이냐. 나는 팔 없는 병신이다. 낄낄낄. 이러는 분위기다. 그 시대가 그랬다. 너도 별수 없고 나도 별수 없고 우리 다들 별수 없네. 이러며 헛웃음 짓는다.


    그때는 공사판에서 일하며 빨리 돈 벌어서 여기를 떠야지 하고 있었다. 농부들은 내 자식들만이라도 농촌을 떠나야 하는데 이러고 있고 탄광의 광부들은 3년만 빡세게 일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어 이러고 도시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뼈대있는 양반집안 후손이 이러고 있으니 창피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여기를 떠나자 이러는 거다.


    농민은 농촌을 부정하고 광부는 광산을 부정하고 공돌이는 공장을 부정하고 달동네 사람은 한시바삐 강남으로 떠나가고 모두가 모두를 부정하는 시대에 호스티스라는 70년대의 상징물이 생긴 것이다. 모두가 아쉬운 표정으로 찾아와서 빨리 떠나버린다. 도망쳐 버린다. 극단적인 자기부정의 시대였다. 그림은 시대의 반영이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맥락이 있다. 조선시대 수묵화를 보고 배부른 선비들이 일도 안 하고 산천유람이나 하고 있냐 이러면 곤란하다. 그런데 그런 말 꼭 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공산당이다. 허영만의 '오 한강'에 나오듯이 화가들이 정치색을 뺀다고 조약돌이나 그리고 그랬다. 정치색이 있는 그림도 없는 그림도 영역이 있다. 


    정치색이 있다고 가치가 없는 게 아니고 정치색이 없다고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자기 방향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여서 극한을 찍어와야 한다. 중간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발끝만 살짝 담그는 식은 곤란하다. 닫힌계 안에서 일 점을 도출하는 방정식을 세워야 한다. 뱅크시의 낙서가 무슨 그림이냐고 힐난한다면 개념이 없는 거다.


    반대로 낙서야말로 진정한 그림이라고 우겨도 황당한 거다. 그 안에 숨은 균형을 찾아내는지가 중요하다. 뱅크시는 원래 박물관에 가짜 작품을 몰래 갖다놓고 어찌되는지 지켜보는 식으로 예술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 사람이다. 그러나 화단은 그 안에서 균형점을 발견해 버렸다. 예술을 파괴하려고 한 행동이 역으로 예술이 된다.


    깨려고 돌을 던졌는데 깨지는 부분과 버티는 부분 사이에 절묘한 질서가 드러나고 그것이 소실점 역할을 하자 재빨리 닫힌계로 가둬버렸다. 작품과 비작품 사이에 선이 그어져 버리면 그때부터는 뱅크시도 감당할 수 없는 자체논리로 가는 것이며 뱅크시가 자기 작품을 때려부수려고 해도 세상은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약이 오른 뱅크시는 아주 그림을 잘라버리는 기술을 구사했지만 가격은 더 올라버렸다. 하나의 균형점이 도출된 이상 자체의 생명력이 탄생해버린 것이며 이제 작품은 뱅크시의 손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작가도 작품을 죽일 수 없다. 작가가 작품을 깨려고 할 때 대항하는 에너지가 균형점을 만들어 버리는 거다.


    어느 하나의 화살표로 방향을 잡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서 어느 선까지 도달했느냐가 중요한 거다. 그런 방향성과 밀어붙이는 힘과 전달하려고 하는 에너지가 보이면 되는 거다. 그럴 때 작가는 어떤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이 방향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한계점을 찍어보이는 게 중요하다. 한두 작품으로는 안 된다.


    이 기술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한계를 나는 천경자의 미인도에서 발견한다. 그 이후로는 다 퇴행이다. 소실점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거기로 모이고 그리로 사라진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 점을 찍었을 때 우리는 완전성을 포착하게 된다. 그 완전성이 두고두고 우려먹고 복제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므로 가치가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슈에

2019.09.05 (09:24:10)

그런데 천경자 작가 본인은 왜 위작이라고 한 걸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9.05 (18:13:15)

여러가지로 짚이는게 있지만 

그걸 추측하여 말하면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의외로 꽤 자주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슈에

2019.09.05 (21:22:10)

주변에서 천경자 그림이 왜 비싸게 팔리냐고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림이 자기 눈에 좋아보여야 비싸게 팔리는 걸 납득하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그래도 프랑스 감정단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보는 눈이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9.10 (11:57:56)

좋은 그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림을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장식품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요. 


도대체 왜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림을 소장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작가 개인의 솜씨자랑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작업이라는 거지요.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려면 70억 인류가 함께 그려가는 인류전체의 그림에서 

뭔가 빠진 부분을 메워 인류팀을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관객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감성이라는 칼날을 갈아서 예리하게 연마하는 것입니다. 

수유에 대해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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