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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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02 vote 1 2019.08.28 (10:47:11)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존나게


    ‘희귀한 지구 가설’이라는 게 있다. 이를 반박하는 ‘인류원리’라는 것도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이스터섬의 주민들은 생각했다. 우주는 물로 가득하고 뭍은 라파누이 하나뿐이며 자기네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운이 좋아서 이 희귀한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 거다.


    내가 카누를 타고 동서남북으로 2천 킬로까지 가봤는데 뭍이 하나도 없더라고. 대양에서 대략 2만5천 분의 1의 희귀한 면적인 라파누이를 우리가 차지하고 있지. 확인된 것만 그렇고 카누를 타고 바다 끝까지 더 가보면 확률은 무한에 근접할지도 몰라. 우린 정말 운이 좋은 거야.


    그러나 대륙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쟤들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운이 나빠. 가까운 섬이 핏케언제도인데 2천 킬로 이상 떨어져 있지. 지구의 1/3이 뭍인데 쟤들은 워낙에 재수가 없어서 외떨어진 땅을 차지한 거라구. 라파누이 사람들의 생각이 희귀한 지구 가설이다.


    이를 반박하는 육지 사람의 생각은 인류원리다. 인류는 운이 좋은가 아니면 재수가 없는가? 어쨌든 라파누이 사람들은 동서남북 사방의 바다를 보고 낙담했다. 그리고 자기네는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라고. 우주는 광막하고 그나마 물로 꽉 차 있어. 땅은 이렇게 작아.


    그런데도 우리는 진화했지. 어엿한 인류로 진화하다니 대단하지 않아? 확률적으로 이게 가능해? 어떻게 이렇게 좁은 땅에서 엄청난 진화가 일어날 수 있지? 여기서 한 번쯤 신의 은총을 생각해볼 만한 거 아냐? 신의 개입이 없이 우연에 의해서 이 땅에서 생물의 진화가 가능해?


    사실이지 희귀한 지구 가설이나 인류원리나 존재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개떡 같은 소리다. 하여간 검색해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힘의 비율이 조금만 달랐다면 안정적인 원자는 존재할 수 없고 천체도 생명도 등장하지 못했다고.


    우주의 밀도는 임계밀도에 근접해 있는데 여기서 조금만 값이 더 컸다면 빅크런치로 우주는 멸망하게 되어 있고 반대로 조금만 작았더라면 빅프리즈로 멸망했을 거라고. 딱 맞게 균형이 잡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너무 너무 존나게 존나게 허벌나게 운이 좋은 성공사례다.


    물론 이를 반박하는 아이디어들도 많다. 드레이크 방정식이라는 것도 있는데 희귀한 지구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을 계산하는 방정식이다. 그렇게 구하여 얻은 값은 보나마나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곱하기 무한대다. 사실이지 확률의 계산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희귀한 지구 가설이든 인류원리든 헛다리 짚었다. 이게 확률의 문제인가? 왜 거기서 확률이 나와? 어쨌든 의미있는 영역 곧 인류가 무선통신과 직접이동의 방법으로 교류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작다. 그 작은 영역 안에서는 확실히 희귀하다. 라파누이 주변에서는 희귀한 거다.


    인류가 라파누이섬에 사는 사람과 같은 신세라면 스스로는 운이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곱하기 무한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단 자연스럽다. 의미영역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곧장 수염난 할아버지 모습의 신을 떠올리며 기도를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거기서 왜 할배가 등장해? 장난하나? 할배는 조상이다. 조상은 처음이다. 처음을 생각해야 맞지 않을까? 인간은 추상적 사고에 약하다. 처음을 떠올려야 하는데 할배를 떠올린 것이 인간 뇌의 마술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할배는 당연히 지어낸 거짓이나 처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에 인류는 우주의 사이즈를 토성까지로 생각했다. 그 너머에는 천구가 있고 거기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우주의 덮개다. 부시맨은 다르게 생각한다. 우주의 끝은 밤낮으로 걸어서 20일을 가야 해. 더 멀지도 몰라. 영화의 한 장면이다. 부시맨이 20까지 세다니 말이 되나?


    우주는 계속 커졌다. 한동안은 우리은하를 우주의 사이즈로 알았다. 그러다가 허블이 안드로메다의 정체를 밝히는 바람에 인류는 턱이 빠졌다. 허블은 10년 사이에 두 번 인류의 턱을 빼놓았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고. 우리는 137억 년이라는 숫자를 알고 있다. 우주의 끝이 된다.


    팽창을 감안하면 지름 천억 광년을 생각할 수 있다. 그 바깥에는? 우주의 곡률은 0에 근접한다. 평평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태양과 가까운 별 사이의 거리는 4광년 정도다. 우리가 아는 관측가능한 천억 광년의 거리는 태양계 안에서 지구와 명왕성까지의 거리일지도 모른다.


    명왕성이 퇴출되고 제 9행성을 아직 찾지 못했다.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크기도 작지 않다. 그런데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제 9 행성을 넘어 아득히 가야 알파 센타우리에 도착한다. 그 정도의 넓은 간격으로 우리우주 바깥에 다른 천억 광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천억 광년 간격의 우주들이 무한에 가깝게 많을지도 모른다. 137억 년 전에 우리 우주가 탄생했듯이 천억 광년 바깥에 또 다른 천억 광년들이 무수히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우주 바깥의 별도우주인지 아니면 그 영역까지 우리우주로 쳐야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양파껍질은 충분히 벗겨지지 않았다. 물리세계에서 광속을 넘을 수 없지만 초물리 세계는 광속을 넘는다. 외계의 그들은 지구를 바라보고 라파누이섬에 갇힌 불쌍한 녀석들이라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구에 연락을 보내오고 있는 거다.


    광막한 우주에서 느려터진 전파통신은 의미없고 빛보다 빠른 다른 통신수단을 그들은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 왕래는 어차피 불가능하고 말이다.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게 맞다. 성급한 결론이 문제다. 


    나는 논쟁을 즐기는 과학자들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 한다고 믿는다. 토성까지를 우리우주로 알면서 이런저런 이론을 내놓고 있다면 황당한 거다. 우리는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여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방향이 존재할 뿐이다. 무엇인가 하나가 더 있다.


    단정적인 표현을 삼갈 일이다. 의미있는 영역에서 지구가 희귀한 것은 맞다. 그런 희귀한 핫스팟은 우주에 무한히 많이 있을 수도 있다. 우주에 다이아몬드는 무한히 많다.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행성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이아몬드는 희귀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신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수염난 할배를 떠올리므로 유의미한 대화를 하기 어렵다. 처음을 생각하자. 신은 처음이다. 처음에 상수를 잘못 집어넣으면 이에 연동되어 매우 많은 것이 바뀐다. 무슨 뜻인가? 처음과 현재와의 사이에 몇 단계들이 있는가다. 양파껍질은 몇 꺼풀인가?


    오랫동안 라파누이 사람의 사유를 가로막은 것은 대양이었다. 저 막막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망적이다. 오랫동안 인류의 사유를 가로막은 것은 천구였다. 별들이 박혀있는 두꺼운 덮개를 생각하노라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숫자들에 뇌가 막혀 있다.


    137억 년이라는 숫자. 우리은하에 존재한다는 4천억 개 항성의 숫자, 관측가능한 천억 광년이라는 숫자가 우리의 숨통을 찍어누른다. 천구의 단단한 덮개처럼 그대의 사유를 가로막는다. 탈출할 일이다. 가볍게 양파껍질을 돌파해야 한다. 라파누이의 대양을 넘어 신세계로 가자.


    토성의 한계를 넘어가자. 천구의 덮개를 뚫고 가자. 137억 년 숫자를 돌파하자. 진정한 것은 거기서 만나게 된다. 차원의 단계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사유를 넓히려면 통일장이론을 넘어 초끈이론을 넘어 그 이상의 경지로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과 현재의 관계는 크다.


    희귀한 지구 가설도 인류원리도 둘 다 가소로운 것이다. 운이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좋아서 자기들만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믿는 라파누이 사람도 운이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나빠서 하필 라파누이에 갇혔다며 비웃는 육지 사람의 생각도 한심한 거다.


    컴퓨터 게임 속의 아바타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쟤는 운이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좋아서 벌써 만렙을 찍었군. 쟤는 운이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존나게 나빠서 아직도 쪼렙을 면치 못하고 있군. 그러나 컴퓨터는 원래 그런 것들을 생성하는 법이다.


    만렙과 쪼렙은 하나다.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누구는 만렙이고 누구는 쪼렙인 것이 아니라 만렙이 쪼렙이고 쪼렙이 만렙이다. 쪼렙과 만렙은 동시에 만들어진다. 단, 게임회사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진리일 뿐이다. 쪼렙과 만렙의 구조가 나올 때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컴퓨터란 그런 것이다. 신은 희귀한 지구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라파누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양이 작으면 육지에 커다란 사막이 만들어지고 기후변화가 극심해진다. 대양은 커다란 조절기다. 대양은 태양에너지의 90퍼센트를 흡수하여 고루 분산해준다. 


    군에 입대하면 특별히 좋은 보직을 받는 사람이 있다. 컴퓨터 추첨으로 자대를 배치하는데 그들은 특별히 운이 좋아서 좋은 부대에 배치되었다고 믿는다. 당연히 거짓이다. 빽있는 병사가 들어온다. 빽있는 병사가 좋은 부대에 당첨될 때까지 반복해서 프로그램을 돌리는 거다. 


    프로그램 자체는 군단 행정병이 손댈 수 없다. 완벽하다. 단, 그 프로그램을 몇 번 취소하고 반복하여 돌릴지는 행정병이 결정할 수 있다. 운이 좋은 게 아니고 예정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거다. 그 행정병이 신이다. 우주가 특별히 넓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대양이 넓어야 육지가 산다. 우주가 넓어야 희귀한 지구가 만들어진다. 우주의 넓음에 꽂힌 과학자는 인류원리를 말하고 육지의 안정에 꽂힌 과학자는 희귀한 지구 가설을 말한다. 그런데 둘은 세트다. 만렙과 쪼렙은 프로그래머에 의해 동시에 탄생한다. 둘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독자가 있을 것 같아 첨언한다. 신은 수염난 할배가 아니다. 게임 속의 아바타와 게이머의 관계를 떠올리자. 그사이에 몇 단계가 있느냐다. 아바타들의 활동무대가 있고, 그 배후에 프로그램이 있고, 그 배후에 하드웨어가 있고, 그 배후에 프로그래머가 또 있다.


    물질세계는 그 단계 중의 하나다. 층위가 있다. 우리가 아는 물질세계 위에 또 무슨 세계가 있고 그 위에 또 뭐가 있고 그 위에 또 뭔가가 있는데 구조론은 항상 다섯이므로 우리는 그중에 제 1 세계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 1 세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결론을 내면 안 된다.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르는 것이다. 1/800만의 확률로 로또에 당첨되려면 적어도 인구가 800만은 되는 나라에서 복권사업을 해야 한다. 인구 10만인 작은 나라에서 1/800만의 확률이라는 로또는 성립할 수 없다. 로또가 다 팔리지 않아서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 수가 있다는 거다.


    생명의 진화나 인류의 등장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들 사이에는 일정한 함수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구하려는 일정한 확률과 모집단의 관계다. 운이 허벌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우연인 것도 아니고 엄정한 비례식이다. 그것을 담보하려면 우리가 모르는 양파껍질은 있어야 한다.


    구조론의 신은 전체와 부분 사이 그리고 처음과 지금 사이의 어떤 수학적 균형이다. 그것이 있다. 그 균형이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럴 수는 없다. 균형이 무너졌을 때 사건은 존재까지 진행하지 못한다. 사건이 에너지와 구조와 관계를 거쳐 존재까지 가려면 균형이 요구된다.


    신이 없는 우주는 망했다. 신이 희미한 우주도 망했다.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우주는 신이 있다. 균형이 있다. 통일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그 과정에 다섯 단계가 있으며 우리가 목격하는 우주는 마지막 존재단계의 우주다. 그리고 사연이 있다. 존재까지 오면서 겪은 게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8.29 (04:06:00)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우주는 이 있다. 균형이 있다. 통일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 그리고 사연이 있다. 존재까지 오면서 겪은 게 있다."

http://gujoron.com/xe/1118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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