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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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00 vote 0 2019.08.25 (11:41:35)

      

    존재가 있다


    존재存在는 있는 것이다. 존存도 있고 재在도 있다. 그러니까 있는게 있는 거다. 먼저 있음은 관측자인 인간에 맞서는 관측대상의 있음이며, 다음 있음은 관측자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의 있음이다. 무엇인가? 인간이 존재를 들여다보듯이 존재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말이다. 관측한다는 것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맛본다거나 해본다고 할 때의 보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건드려보는 것이 보는 것이다. 있다는 것은 주변과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서로 건드리게 되는 상호작용의 구조 속에 있어야 한다. 짝지어 세트로 있어야 한다. 우주 안에 홀로 있는 것은 없다. 존재가 없다. 홀로는 외력의 작용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 속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있는 것이다. 존재 너머에 관계가 있다. 관계가 존재보다 먼저 있었다. 관계가 구체화 되어 부부라거나 커플이라거나 하는 타이틀을 얻으면 비로소 존재가 된다.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무시당하지 않고 주변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므로 든든한 존재가 된다. 구조를 얻어야 가능하다.


    관계 너머에 구조가 있다. 평등한 부부관계도 있고 수직적인 상하관계도 있다. 일을 진행하면 순서가 성립한다. 머리와 꼬리로 역할이 나눠진다. 살아서 움직이는 구조에 들어야 관계가 유지된다. 팀에 들고 가족에 들고 동료에 들어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 동아리 안에서 역할을 가져야 밀려나지 않고 겉돌지 않게 된다. 


    그러려면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구조 너머에 에너지가 있다. 구조는 계 안에서 에너지의 모순을 처리하는 구조다. 에너지를 얻으려면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다시 에너지 너머에 사건이 있다. 사건은 닫힌계 안에서 작동한다. 원소들이 균일해야 닫힌계가 만들어진다. 사건은 에너지를 수렴하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확산은 균일한 계를 깨뜨려 사건을 중단시킨다. 사건은 깨지거나 진행하거나이며 깨지면 끝이고 진행하면 사건>에너지>구조>관계>존재로 나타난다. 우리는 사건이 종결된 다음 존재를 발견한다. 존재를 해부하여 속성을 찾아 통제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금은 왕수에 녹는다. 금의 단단한 성질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호걸이라도 미녀 앞에서는 순식간에 무장해제를 당하곤 한다. 북풍이 벗겨내지 못하는 두꺼운 외투를 햇볕은 순식간에 처리한다. 관계가 존재를 바꾼다. 대단한 사람도, 고집센 사람도 임자를 만난다면, 관계를 맺으면 단 번에 허물어진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존재는 관계 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변질되고 만다.


    우리는 존재를 관찰해 관계를 찾고, 관계를 바꾸려다 구조를 발견하고, 구조를 건설하다가 에너지를 포착하고, 에너지를 얻으려고 사건을 일으킨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으로 다가서는 순서는 존재>관계>구조>에너지>사건이다. 반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는 사건>에너지>구조>관계>존재다. 일단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솔로인 자기 존재에 실망하여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만 싸대기 맞기 다반사다. 역방향이므로 실패한다. 통제권이 없다. 나의 고백은 외면된다. 나의 인사는 거부된다. 나의 요청은 기각된다. 세상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나의 입장은 문전에서 저지된다. 등 떠밀려 밀려나고 만다.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거다.


    만약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먼저 구조를 바꿔야 하고 그 이전에 에너지를 얻어야 하고 그 이전에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사건이 에너지를 낳고 에너지가 구조를 바꾸고 구조가 관계를 바꾸고 관계가 반석처럼 존재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촛불이라는 사건이 먼저 있었고 이에 에너지가 결집되며 우리는 구조를 획득한 거다.


    그러므로 한일관계도 달라지게 된다. 존재의 우뚝함은 그 다음이다. 대개는 희미한 존재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관계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 무시되기 다반사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세상과 긴밀하지 않고 도처에서 단절되어 있다. 관계를 바꾸어 존재를 다지려고 하지만 자의적으로 관계를 바꿀 수 없다.


    관계는 둘의 합의로 결정되며 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구조이고 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에너지고 그 에너지를 유도하는 것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이 촉발될 수 있는 균일한 계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취미든 고향이든 뭐든 비슷한 점을 찾으려고 한다.


    균일해야 계가 성립되고 외력이 작용할 때 토대의 공유 형태로 계 내부에 축과 대칭을 만들어 사건을 격발시킬 수 있다. 그럴 때 에너지가 얻어진다. 에너지가 얻어져야 뭐라도 해볼 수 있다. 공부를 하고 여행을 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균일해지려는 것이다. 기량과 수준이 남들과 같아져야 팀에 들어 사건에 가담할 수 있다.

  

    사건을 주도하려면 균일의 조건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축구로 팀을 이룰지 야구로 팀을 이룰지 정하려면 동료와 같아지는 것으로 부족하고 환경과 같아져야 한다. 결정적으로 미래와 같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남들과 달라지게 된다. 먼저 와서 깃발을 꽂고 동료를 불러모을 수 있는 선지자는 예로부터 드물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8.26 (08:53:37)

"사건을 주도하려면 균일의 조건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 결정적으로 미래와 같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남들과 달라지게 된다."

http://gujoron.com/xe/1117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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