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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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21 vote 0 2019.08.21 (18:55:59)


    세상은 사건으로 되어 있고 에너지로 되어 있고 구조로 되어 있다. 사물이 아니고, 물질이 아니고, 속성이 아니다. 이는 관점의 차이다. 사건의 관점, 에너지의 관점, 구조의 관점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의 원인측에서 보는 것이다. 반대로 사물로 보고 물질로 보고 속성으로 보는 관점은 이미 끝난 일의 결과측을 바라보는 것이다.


    개미군집이 있다. 사물로 보고 물질로 보고 속성으로 보는 사람은 백만 마리 개미의 행동을 낱낱이 추적한다. 반면 사건으로 보고 에너지로 보고 구조로 보는 사람은 여왕개미 하나만 본다. 여왕개미의 페로몬이 백만 마리 개미군단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개미떼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 보나마나 페로몬을 따라 개미굴로 간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부분에서 전체로 갈 것인가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면 연역이고 부분에서 전체로 가면 귀납이다. 둘 다 지식을 구하는 방법은 된다. 문제는 지식에 대한 정의다. 파편화된 부스러기 지식도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뇌의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자투리 정보들 말이다.


    완전성이 중요하다. 지식의 정의를 써먹을 수 있는 완전한 지식으로 좁혀서 정의하자. 이는 구조론의 제안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연역적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다. 보통은 학습에 의해 수집된 귀납적 지식들이 뇌 이곳저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연역적 지식에 의해 써먹을 수 있도록 정렬된다.


    책에서 배운 관념적 지식이 현장에서 먹히는 실전지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체계화된 지식만 지식이다. 진리의 중심과 연결되지 않고 겉도는 지식은 인정되지 않는다. 엄격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귀신, 영혼, 사후세계, 초능력, 영매술, 도참설, 괴력난신, 음모론 따위 엉터리들은 지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구조론의 입장이며 일반적으로 통용되기로는 개소리나 잡소리도 지식으로 통용된다. 기독교 지식도 신학이라는 이름을 얻어 고매한 지식이 되고 주술사의 민간요법은 의학이 된다. 어쨌든 서울대는 한의학과가 없다. 우리가 침구사나 접골사, 안마사, 이발사를 의사로 인정하지 않듯이 지식에 대한 정의에 차이가 있다.


    사물로 보고 물질로 보고 속성으로 보는 귀납적 지식도 정의하기에 따라서는 지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구조론에서는 이를 배격한다. 확실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역으로 보면 이롭다. 지식의 총량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부간에 확실한 결론이 난다. 귀납으로 보면 일단 지식의 총량이 매우 많아진다.


    그리고 결론이 나오지 않아 얼버무리게 된다. 한의학은 의학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두고 한국사회는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얼버무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후유증이 일어난다. 의료보험 비용이 올라간다. 수학은 확실하게 결론을 낸다. 수학은 본질에서 연역이기 때문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만유는 하나의 프레임을 쓴다.


    그러므로 쉽다. 사건은 원인에서 촉발되어 결과에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귀납으로 보면 눈앞의 단서로부터 시작되어 그 끝은 없다.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다반사다. 전염병이 돌면 사람이 죽는다. 귀신의 소행이다. 푸닥거리를 하면 낫는다. 진짜 낫는가? 어떤 사람은 낫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는다. 정성이 부족해서 낫지 않는가?


    헌금을 얼마나 해야 낫지? 기도를 몇 번 해야 낫지? 정성을 얼마나 들여야 낫지? 그 한계는 없다. 무한대다. 헌금을 많이 하고 기도를 빡세게 하고 밤낮으로 치성을 드리면 낫는데 한도는 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귀납이 없는 게 아니고 불완전하므로 구조론의 시스템에서 배척하는 것이다.


    백만 번 반복해야 할 일을 한 번에 해치우므로 연역은 쉽다. 연역은 구조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단, 연역은 장벽이 있다. 복제하는 틀을 뇌에 설치해야 한다. 깨달음이다. 그 능력은 원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제대로 써먹는 사람은 드물다. 예술가들은 부지불식간에 그 능력을 써먹는다. 의식적으로 알고 그것을 써먹어야 진짜다. 


    귀납은 결과에 선다. 결과가 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대응할 수 있다. 연역은 원인에 선다.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의 첫 출발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바둑 초심자는 상대가 두는 것을 보고 어디에 둘지를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이 선수를 두면 곤란하다.


    깨달음은 이 문제를 해결한다. 머릿속에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시작한다. 보통은 입자의 포착으로 사유를 시작하지만 틀렸고 질을 포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어떤 균일한 계가 만들어져 있다면 긴장은 고조되는 법이며 사건의 격발은 시간문제다. 구조를 모르는 일반인보다 한 단계 앞질러 가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9.08.21 (21:07:22)

한 과학자가 어떤  연구를 함에 있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한다고 할 때 이것을 연역과  귀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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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1 (22:54:55)

보통은 가설과 검증을 귀납이라고 하지만

구조론에서는 검증과정에 사용되는 수학적 원리의 담보가 


이미 확보되어 있으므로 연역이라고 봅니다.

즉 가설과 검증은 구조론에서 연역입니다.


그러나 보통 말하는 귀납과 연역은 사실 귀납추론이나 연역추론이 아니고

귀납적 방향 혹은 연역적 방향인 것이며


가설의 제시단계에서 먼저 부분적 단서를 확보하고

다음 전체의 원리로 검증하므로 부분이 전체에 앞서는 즉 귀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추론이 아니고 막연한 느낌으로 하는 말이며

과학자가 부분의 단서에 먼저 주목했더라도 전체의 원리는 


선배 학자들에 의해 혹은 수학자들에 의해 천년 전부터 확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논리로 보면 모든 추론은 연역추론이고 귀납은 인간의 착오입니다.


단서로부터 추론을 시작하며 확률적으로 때려맞추는 귀납추론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납이지만 검증에 사용하는 논리는 다른 학자들에 의해


길게는 3천년 전부터 획득되어 있으므로 연역논리로 봐야 한다는게 구조론의 입장입니다.

학문을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작업으로 본다면


모든 학자는 선배 학자들이 만들어놓은 특히 수학에 의지하여 복제되고 있는 것이며

그 수학이 연역이므로 모든 지식은 연역인 것입니다. 


즉 먼저 만들어진 논리의 틀에 개별적인 사실을 끼워맞추는 거지요.

즉 빈 칸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는 숫자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원리를 복제하여 개별적인 사실에 적용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는 학문 전체의 시스템이 그렇다는 거고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검증하는 원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개별적인 사실에서 얻는 단서에 먼저 주목했으므로 귀납이라고 우기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는 학문을 인류전체의 공동작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작업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문제인데


구조론에서는 개인작업으로 보는 관점을 하지말라는 자기소개로 규정하며

인류전체의 공동작업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므로 모든 학문의 성취는 연역이고 귀납은 없습니다.


귀납은 없는데 연역이고 귀납이냐 하고 물으면 안 되죠.

골백번 말했지만 귀납은 그냥 편의적으로 하는 말이고 엄밀한 의미에서는 없습니다. 


구조론에서는 귀납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편의적으로 귀납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있습니다. 


어떤 형사가 담배꽁초를 보고 살인사건을 추론했다면

그 형사 입장에서는 귀납이지만 사실 살인사건은 만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목하지 않았다고 그게 없었던 것처럼 말하면 곤란합니다.

이전부터 있었던 프레임을 가져다 쓰는 것이므로 연역추론이 맞습니다. 


개별적 사실에서 보편적 원리를 발견해내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어떤 개인이 개별적 사실을 먼저 알고 보편적 원리를 나중 깨닫는 수는 있지만 


이는 추론이 아니고 학습입니다.

먼저 만들어진 보편적 원리를 복제하여 개별적 사실에 적용하는 것이며 


뇌의 작동원리가 프레임을 먼저 확보하고 개별적 사실을 삽입하는 방식을 사용하므로

자신이 개별적 사실에 주목했든 말든 보편적 원리가 먼저입니다.


궁극적인 단계까지 추궁하면 보편적 원리는 뇌구조의 형태로 원래 있는 것이며

개나 돼지는 그게 없어서 머리를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구조가 원래부터 개별적 사실에서 보편적 원리로 찾아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 보편적 원리를 알고 있는데 써먹지 않다가 어떤 계기로 각성하여 써먹는 수는 있는데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경우도 사용하지 않았을 뿐 뇌 안에는 만들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과와 복숭아를 먼저 알고 나중에 사과와 복숭아가 모두 

나무열매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본인의 입장에서는 귀납이 되겠지만 그게 하지말라는 자기소개고


나무가 먼저 있고 과일이 나중 발생하는 것이며

집합과 원소와의 관계를 먼저 알고 그것을 과일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획득되어 있는 지식을 복제한 거지요.

지식의 전체구조를 알고 논해야지 파편화된 부스러기 지식으로 논하므로 헷갈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8.22 (04:36:50)

"백만 번 반복해야 할 일을 한 번에 해치우므로 연역은 쉽다. 연역은 구조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단 연역은 장벽이 있다. 복제하는 틀을 뇌에 설치해야 한다. 깨달음이다. 그 능력은 원래 갖추어져 있다."

http://gujoron.com/xe/1116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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