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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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즈주의는 주관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말은 증거 추가에 따라서 모집단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관적이죠.

이때 증거추가는, 몬티홀 문제라면 사회자가 문을 열어보인 것을 말하는 거고요. 

베이즈주의는 대상이 맞을 확률을 모집단의 크기 변화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므로 끝까지 확률을 구합니다.


반면, 빈도주의는 모집단을 바꾸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거죠. 

새로운 증거를 보더라도 단순히 사건의 일부가 실현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령 주사위를 던져서 어떤 눈이 나온 것으로 칠뿐이죠. 


대신 유의수준이라는 걸로 대상의 진위여부를 판별합니다.

유의수준은 "야 내가 살아보니깐, 보통 5% 미만은 오류가 날 수도 있는 거야!"라는 겁니다. 

이때 유의수준은 수학계에서 비과학적인 숫자라고 열라게 까이죠. 

연구자에 따라서 바꾸기도 하고요.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64


결론적으로 보면, 

둘 다 맞으며,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분모를 바꾸는 건 베이즈주의고

분자를 바꾸는 건 빈도주의라 할 수 있는 거죠. 


근데 머신러닝에는 베이즈주의가 사용되죠. 이게 핵심입니다. 

근데 통계학의 표준은 빈도주의입니다.

재밌는 거죠. 


두 진영 전쟁 역사는 유구한데, 

통계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둘이 왜 저렇게 피터지게 싸우나 싶겠지만, 

이게 원래 인간에게 쉽지 않은 겁니다. 


[레벨:4]현강

2019.08.16 (00:46:35)

몬티홀 경우에서 결정을 바꾸는 행위는 주관적 확률을 1/3에서 1/2로 도약시키는 것이며, 이 말은 승률이 1/2이라는 뜻이 아니다. 

모집단의 크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결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모집단의 크기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유효하다. 

일단 그 결과로 얻어지는 승률 2/3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요.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요?

챠우님의 몬티홀 본문에서는 '모집단의 크기를 바꾼다'가 아니라 '모집단의 크기가 바뀌었다'고 표현하셨기에 제가 그 맥락을 잘 전달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계를 선택하는 문제'라는 마지막 표현과 이번에 새로 링크가 첨부된 글을 읽고 생각해본 결과 '모집단의 크기를 주체적으로 바꾼다'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이니 챠우님 글의 맥락이 보였습니다.

오늘 갑자기 일거리가 잡혀서 하루종일 댓글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은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참 의문이 남는데, 계를 꼭 집합적 관점인 모집단으로 볼 필요가 있는건가요? 

주관적 확률 자체를 계라고 칠 수 있지는 않을까요? 

계의 이름이 주관적 확률 1/2이고, 계(주관적 확률 1/2)에 외력(시행)이 가해지면 나오는 결과값인 량은 과연 그 질에 걸맞은 1/2 확률인 데이터인 식으로요. 

아 그런데 이런 식이면, 동전이나 주사위 던지기는 질과 량이 딱 어울리지만 몬티홀에서는 애초 계와 외력이 성립할 수가 없겠네요. 

플레이어가 사회자가 개입된 여지를 정확히 해석하지 못하므로 주관적 확률은 말 그대로 주관적인 승률이니까요.

실제로는 계(객관적 확률)과 외력(시행)이 성립.

프로필 이미지 [레벨:7]챠우

2019.08.16 (02:51:46)

말로 다 전달하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제가 문자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부적인 표현은 개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읽는 사람 입장이라면 헷갈릴 소지가 다분합니다. 다만 제 말은 힌트로만 보시고, 그 이전에 이미지를 떠올려 보시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론상, 이미지를 말로 다 전달하기는 무리수이니깐요. 



"모집단을 바꾼다/바뀐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물론 구조론의 계와 확률의 모집단은 그 의미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확률의 모집단의 총합은 언제나 1입니다. 개념적으로 구조론의 질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겁니다. 구조론에서의 "질"은 어떨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질은 점일 수도 선일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선이고,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점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 안에서 벽(계)을 바라보면 그것은 어떤 대상 하나, 즉 점입니다. 그냥 어떤 한계인 거죠. 근데 밖에서 바라보면 그 방 옆에 다른 게 또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그 방은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계가 존재하려면 그 계가 아닌 것도 있어야 하잖아요. 만약 어떤 공간에 사과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게 사과일까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사과라는 건 배도 있고, 수박도 있고 하니깐 사과인 겁니다.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건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는 그것을 가리킬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닌 것도 함께 말해야 하며 둘을 가르고 통합하는 관점도 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질을 관계(선)라고 이해하지만 대부분은 질을 점으로 이해할 겁니다. 제가 점적 표현인 모집단을 질에 대응시킨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틀린 말이 맞습니다. 근데, "계"라는 말은 어떻습니까? 물리학에서 말하는 계가 과연 관계를 의미합니까?


물리학의 "계"와 구조론의 "계"는 그 의미가 다른 겁니다. 생긴 건 똑같지만, 전제(모형)가 다르니깐요. 근데 말할 때마다 일일히 이런 걸 언급하기도 피곤한 겁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모집단이라고 말하면 통계의 모집단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언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는 어떤 단어 하나입니다. 그냥 점처럼 말하죠. 근데 구조론에서 말하는 언어는 흐름과 관계이며 사건 구조로부터 연역되는 것 자체를 말합니다. 과연 현강님이 말씀하시는 "언어"와 제가 말하는 "언어"는 같은 것인가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게다가 어떤 개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단순히 사전에 있는 의미를 언어로 쓰는게 아닙니다. 가령 같은 짜장면을 먹더라도 어떤 사람은 맛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합니다. 왜 둘은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언어를 다르게 표현할까요? 각기 맛에 대한 경험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구조론 안에서의 "언어"는 관계적인 언어를 말합니다. 이 정도는 서로 약속하고 써야죠. 진술만 말해도 전제를 깔고 말하는 거에요.


#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몬티홀 문제가 재미있는 건 답(전제)이 두 개이기 때문이며, 답이 두 개인 이유는 애당초 진술이 스스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진술은 전제에 종속된 거니깐요. 즉 몬티홀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진술을 제시하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제를 제시하는 문제입니다. 선택을 바꾸고 말고는 나중 문제라는 거죠. 1/2와 2/3은 전제입니다. 선택을 바꾸는 게 진술이고요.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Alice drove down the street in her car.(진술)"의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앨리스가 그녀의 차 안에 있는 거리를 운전했다."와 "앨리스가 차를 타고 거리를 운전했다."죠. 이 문장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이유는 말을 하다가 말았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street"인지, 어떤 앨리스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은 겁니다.(진술에 앞선 전제를 분명하게 하지 않은 것. 괜히 Alice가 아닙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street가 차 안에도 있을 수 있는 거죠.)


몬티홀 문제의 경우에 내가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를 말하는 것 같지만(진술),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선택의 전제가 1/2인지 2/3인지입니다. 그리고 둘 다 말이 됩니다. 근데 두 타입의 인간은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싸우겠죠.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전제를 통해서 진술을 해석하려 하고, 그리고 인간의 인지특성상 한 번 정한 전제를 쉽게 바꾸지 못하므로 단순히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논쟁의 포인트가 "선택을 바꾼다 or 선택을 안 바꾼다"라고 하니 싸움이 끝날 리가 없습니다. 엉뚱한 걸로 싸우고 있는 거죠. 제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인간은 문제를 발견해나가는 것일뿐이지, 처음부터 단번에 문제를 파악할 수 없는 거라고요. 다만 모형을 사용해서 좀 더 빨리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계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발견하는 겁니다. 



참고로 구조론의 언어를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이미지나 동영상을 머리에 떠올리시면 좋습니다. 말은 말일뿐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말 이전에 동영상(사건)이 있고, 말은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습니다. 말이라는 것도 사건을 번역한 것이며, 이 번역 자체도 하나의 사건입니다. 말을 제시하기 전에 이미지를 제시하시면 상대가 더 쉽게 납득할 겁니다.


구조론 안에서는 상대의 관점만 파악하고 내용은 잘 보지도 않습니다. 관점만 보면 혹은 말머리만 보면 그 사람이 할 말은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는 이유는 관점이 곧 계(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내용이 형식을 벗어나겠어요? 딱 보면 아는 거죠. 상대의 시선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만 보고 판단하는 겁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챠우

2019.08.16 (03:28:48)

"모집단을 바꾼다"라기 보다는 "모집단의 내부 비율"을 바꾼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몬티홀 문제에서는 정답과 오답의 비율이 바뀌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베이즈주의에서 모집단은, 그 내부 비율을 포함해서 말하는 겁니다. 모든 확률은 비율로 표현되며, 그것은 계1을 구성하는 내부 비율까지도 말하는 겁니다. 저도 막 만들어낸 해석과 개념이라 표현에 부족한 점이 있네요. 


베이즈주의는 그 비율을 새로 습득한 증거에 따라서 바꾸며, 빈도주의는 바꾸지 않는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듯 합니다. 

그래서 베이즈주의는 귀납적이고, 빈도주의는 연역적입니다. 근데 빈도주의의 연역은 구조론의 연역과는 좀 다릅니다. 구조론의 연역은 모형을 사용하는 것이고, 빈도주의의 연역은 단순히 전체를 1이라고 확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베이즈추론도 연역적이긴 하죠. 어쨌든 1을 사용하니깐요.


베이즈주의가 귀납적인 이유는 모집단의 구성비율을 처음부터 다 알 수는 없다는 귀납추론의 전제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귀납추론도 계를 1이라고 정하긴 하거든요. 헷갈리시죠? 인간이 만들어놓은 학문이 다 개판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적(的)이라는 말을 남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잘못된 언어로 한계가 있는 개념을 설명하다보면 생기는 현상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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