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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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16 vote 0 2019.08.06 (22:13:54)

    문학의 구조로 보자. '질'은 작가의 스타일이다. 남의 스타일을 서로 베껴먹다가 정형화되면 장르가 된다. 어원으로 보면 style은 스틸로 만든 펜촉이다. 펜촉이 두꺼우면 볼드한 글씨체가 만들어지고 펜촉이 가늘면 가느다란 글씨체가 만들어진다. 스틸의 굵기에 따라 균일한 글씨체가 탄생하므로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작품 전체를 균일하게 묶어주는 것이 스타일이다. 그것은 작가의 개성을 반영하는 문장의 형식이다. 길게 늘어지게 쓸 수도 있고, 짧게 끊어지는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가쁜 호흡으로 휘몰아치는 문장을 만들 수도 있고, 지나친 설명으로 늘어지는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온갖 상징과 비유를 써서 화려한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라임을 넣거나 패턴을 반복할 수도 있다. 스타일은 인물의 캐릭터에 반영된다. 섬세한 인물을 등장시키면 섬세한 문장으로 받쳐줘야 한다. 질은 결합한다고 했다. 어떻든 스타일은 작품 전체를 균일하게 묶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붓글씨라도 마찬가지다. 글씨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면 안 된다. 만화의 그림체라도 마찬가지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썼다면 채식주의자의 섬세한 성격에 맞추어서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점에서 균일성을 추구해야 한다. 작가가 되느냐 못되느냐는 자기만의 개성있는 스타일을 개척하는지에 달려 있다. 판타지는 장르라는 핑계로 남의 스타일을 베끼므로 작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공장식 글쓰기라면 작가가 아니다. 


    '입자'는 작품의 주제다. 스타일이 문체와 캐릭터와 주제를 장르의 형식으로 묶는다면 주제는 이야기 내부의 에피소드들을 묶는다. 독특한 관점이 있고 치열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미학이 있어야 한다. 한 방향으로 극한까지 밀어보겠다는 이상주의가 있어야 한다. 상대성의 밸런스가 아닌 절대성의 소실점이 있어야 한다.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독자들이 작가를 이념적으로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타자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독자는 작가를 우리편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단순한 코미디라면 재미가 있을 뿐 우리편이라는 게 없다. 재미있다로 끝내지 말고 작가를 지켜주고 싶다고 독자들이 느껴야 한다.


    묵직한 주제의식에 의해 작품의 여러 에피소드는 한 줄에 꿰어지는 것이다. 산만해지지 않는다. 즉 작품의 주제의식은 여러 가지 사건이 모여서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선의 승리나 정의의 실현이나 문제의 해결이다. 중간에 책을 놓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가게 하는 힘은 주제의식에서 나온다.


    스타일이 주제의식보다 윗길이다. 스타일이 있는 작품은 별다른 재미가 없지만 중간에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읽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예컨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면 전체 줄거리의 흥미진진함은 없다.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감칠맛이 있다.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이 스타일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 


    힘은 플롯이다. 대칭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짜임새다. 대칭은 원인과 결과의 대칭, 부름과 응답의 시간적 호응, 공간적인 피아의 대칭이다. 모든 이야기는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를 교차시킨다. 즉 힘은 방향을 틀어 버리는 것이며 교란시키는 것이며 주인공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며 주로 반대파나 악역을 통해 짜임새를 얻는다.


    억지 플롯을 만들면 히어로에 맞서는 악역이 개연성 없이 등장한다. 예컨대 주성치의 소림축구라면 주인공들이 모여서 소림축구단을 만드는 과정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에 맞서는 상대팀은 그냥 있다고 선언한다. 약물주사를 맞는 장면 한 컷으로 설명 끝이다. 균형이 안 맞는다. 뒤로 갈수록 긴장이 풀려서 매가리가 없다.


    히어로물이 대개 그렇지만 주인공은 어렵게 탄생하고 악역은 그냥 난입한다. 플롯이 짜임새가 있으면 손에 땀을 쥐고 끝까지 집중하게 한다. 선역과 악역 사이에, 우리편과 나쁜편 사이에, 히어로와 베놈 사이에 긍정의 에너지와 부정의 에너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소게임을 벌여야 한다. 둘은 서로 얽혀 침투해야 한다.


    그래야 입체적인 구성이 되는 것이다.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며 그러면서 적절히 균형을 깨뜨려야 한다. 질의 스타일은 호흡이 고르므로 중간에 아무 페이지나 들춰 읽어도 읽어진다. 줄거리와 상관없이 그냥 읽어진다는 점이 각별하다. 주제는 한 번 책을 집어 들면 재미가 없어도 작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끝까지 읽는다.


    힘은 구조가 촘촘해서 페이지마다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하게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질의 스타일이라면 스탕달의 적과 흑이나 발자크의 인간희극이 입자의 주제의식이고 힘의 플롯은 뒤마의 삼총사나 위고의 장발장이다. 뒤마나 위고나 결말을 궁금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쓸데없이 길어도 끝까지 읽게 된다.


    뒤마가 위고가 쓸데없이 길게 쓰는 이유는 페이지 당으로 원고료를 받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게 쓸 이유가 없다. 소설공장을 차려놓고 문하생들을 기용해서 공장식으로 쓰는 것이다. 특히 뒤마는 자기 이름으로 낸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즉 뒤마나 위고의 작품이 대중적인 재미가 있다지만 문학성은 낮다.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들지 않는다. 원고료 한 푼 더 받아먹으려고 더럽게 길게 늘이는구나 하고 혀를 차게 된다. 이 정도에서 작품의 수준은 결정된다. 그 아래로 운동과 량은 별로 의미가 없다. 운동은 내용을 채울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다. 방대한 독서와 충분한 자료수집으로 해결한다. 아는 게 많아야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량은 표현이다. 서술이나 묘사로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 것이다. 단순 글재주다. 비문을 쓰지 않고 띄워쓰기와 맞춤법을 틀리지 말고 전제와 진술, 주어와 술어가 호응되게 쓰면 된다. 문장력을 발휘하면 된다. 중요한 건 작가냐다. 자기만의 개성있는 스타일을 창안하지 않으면 작가는 아니다. 서로 베끼는 판타지는 곤란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8.10 (15:28:28)

"중요한 건 작가냐다. 자기만의 개성있는 스타일을 창안하지 않으면 작가는 아니다"

- http://gujoron.com/xe/111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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