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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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55 vote 0 2019.07.05 (09:37:00)

 구조론을 알고 있다


    누가 물으면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언제?'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NO를 해야 할 상황에서 '으은제.' 라고 말한다. '밥 먹었냐?' '으은제' 이런 식이다.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 '내가 언제 그랬냐'로 반격하는 것이다. 말이 험악하다. 다른 지역 사람이라면 경상도 사람은 말을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하는가 하고 오해할 법하다.


    사건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일어난다. 신문기사 작성요령으로 6하원칙이 있지만 구조론으로 보면 10하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주체와 대상으로 나누어져서 10하가 된다. 곧 능동과 수동이며 작용과 수용이다.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떤? 어떻게 하여지게?, 하였나 되었나다.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떤, 하여지게, 하였나. 되었나는 대략 알려져 있다. 혹은 맞물려 있으므로 어떻게를 알면 하여지게도 알게 된다. 능동을 알면 수동도 안다. 4하는 이미 드러나 있으므로 나머지 육하를 찾으면 신문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다. 언제가 맨 앞에 온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경찰은 알리바이를 추궁한다. 현장부재증명이다. 모든 사건은 언제 어디서를 통과한다. 그런데 어디서는 피해자가 결정한다. 어디긴 거기지. 살인현장은 확보되어 있다. 그러므로 용의자는 '언제'만 피하면 된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그래서 누가 물으면 '언제?' 하고 반격한다.


    일 좀 저질러 봤다는 경상도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용의자로 몰리면 일단 '언제'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디서'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고 '누가'는 보나마나 내가다. 지금 내가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은 피해자고 '왜'는 범행동기가 되고 '어떻게'는 범죄수법인데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밝혀질 일이다.


    일단 내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언제?' 하고 반격하여 상대가 시점을 특정하면 그 시간에 내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깨끗하게 털어버릴 수 있다. '언제'의 시점을 특정해야 하는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수법이다. 이거 꽤나 공격적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구조론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과율을 논리의 도구로 삼는다. 원인은 입자로 제시된다. 과학자들은 사건의 원인을 '누구'에게 돌린다. 틀렸다. 질은 결합한다고 했다. 결합하는 것은 '언제'와 '어디서'다.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범죄사건의 용의자와 피해자는 흉기에 의해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그 결합을 부정하려면 시간과 장소를 틀어야 한다. 


    장소는 알려져 있고 시간만 찍으면 된다. 무슨 추궁을 당하거나 의심을 받을 때마다 반격하려고 '언제?'를 구사하다가 아주 말버릇이 되어버렸다. 알리바이 대기가 훈련되어 있다. '선물 줄까요?' '으은제요.' 왜 갑자기 거기서 '언제'가 나와? '과일 먹을래?' '언제?' 이상하잖아. 왜 말을 이렇게 하지? 어렸을 때 필자의 고민이었다. 


    사건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일어나고 주체는 시간을 특정하고 대상은 장소를 특정한다. 왜냐하면 사건은 어느 장소에서 일어나는데 그 장소로 움직여 가는 자는 언제나 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범인이 잠복하고 있다가 우연히 현장에 나타난 피해자를 공격하는 경우다. 그래도 최종적 공격은 시점이 있다.


    총을 쏴도 방아쇠를 당기는 시점이 있다. 사건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옮겨붙는 형태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넘어가는 시점이 반드시 있다. 자동차라면 시동을 거는 타이밍이 있다. 사건의 원인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움직이고 움직임은 엔진이 작동하고 잠복한 에너지가 특정한 시점에 격발된다.

    

    사건을 유발한 쪽은 에너지가 있는 쪽이다. 범인이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움직이므로 주체에 의해 시간이 특정된다. 대상은 장소를 특정한다. 피해자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범인이 먼저 와서 잠복해 있었다 해도 같다. 칼에 찔린 부위는 공간이고 찌른 시점에 에너지가 이동했고 에너지 출처는 가해자다.


    우리는 시간만 책임지면 된다는 사실을 경찰에게 수사기법을 배우지 않고 신문기자에게 6하원칙을 배우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영리하잖아. 과학자도 모르는 사실을 누가 알려줬지? 경상도 사람은 왜 의심받을 때마다 언제? 하고 시간을 되묻지? 왜 NO가 WHEN이 되어버렸지? 사건은 에너지의 격발로 일어난다. 


    에너지의 격발은 시간과 장소, 주체와 대상의 결합으로 가능하다. 누가 무엇을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향해 에너지를 작용하면 사건은 일어난다. 왜는 범행동기가 되고 어떻게는 범행수법이 된다. 어떤은 피해자의 상태이고 하여지게는 피해사실이다. 하였나는 범행의 최종상태 되었나는 피해자의 최종결과다. 


  언제 - 범행시각에 어디서 - 범행현장에서

  누가 - 범인이 무엇을 - 피해자를
  - 돈욕심에 어떤 - 돈가방을
  어떻게 - 빼앗아 하여지게 - 빼앗겨
  하였나 - 챙겼다 되었나 - 잃었다.

   우리는 배우지 않고도 이런 내막을 다 알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구조론을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사건은 질의 결합에 의하여 에너지의 격발로 일어나며 시간의 부정으로 현장이탈을 제시하면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배우지도 않은 구조론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인과율을 떠들어대는 과학자들은 이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까? 사건의 원인은 입자가 아닌 배경에 있다. 어떤 실체가 원인이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원인이 아니다. '저것이 원인이다' 하고 말하면 그것은 원인이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질로 결합한다.


    결합한다는 것은 공유한다는 말이다. 즉 사건의 원인은 언제나 공유에 있다. 국회 하나를 여야가 공유하므로 시끄러운 것이다. 부부가 건물 한 채를 공유하므로 일이 터지는 것이다. 남북한이 휴전선을 공유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이 현해탄을 공유하므로 말썽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둘의 공유결합이 없다면 사건도 없다.


    원인은 결합이다. 우리는 결합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원인을 부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경우 문제의 해결책은 현장이탈이다. 그곳에 머물러 있으므로 당신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튀어야 산다. 가문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면서 시어머니 흉보는 식은 좋지 않다. 진실을 말하자. 과학자들이 입자를 원인으로 치는 이유는?


    진실은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이름이 있다. 홍길동이나 홍길순이라고 이름을 대면 된다. 그러나 어떤 A와 B가 C를 공유하는 데 따른 모순은 이름이 없다. 에너지는 원래 이름이 없다. 에너지라는 말 자체가 이름을 모르겠다는 뜻이다. 엄마는 아이를 추궁한다. '너 왜 그랬니?' 이렇게 추궁하면 안 된다. 대답할 수가 없다.


    나와 얘가 쟤를 공유한 데 따른 구조적 모순에 따른 에너지 낙차로 인한 심리적 에너지의 충동적 격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지구상에 없다. 그것은 이름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면 긴장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 먹구름이 끼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에너지는 활동하고 있다.


    에너지는 특정 시점에 특정 장소에서 격발된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격발한다. 사건은 복제되므로 반드시 시점이 있다.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분노지수가 꼭지를 넘는 시점이 있다. 왜 사건은 일어나는가? 질의 결합 때문이다. 왜 결합하는가? 효율 때문이다. 이득을 추구하면 사건은 일어난다. 


[레벨:3]이제는

2019.07.05 (16:46:06)

경상도 분들이 '노'라고 부정할 때 왜 '으은제' "으데'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그 속에 이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지 몰랐습니다. 감사~

프로필 이미지 [레벨:8]kilian

2019.07.06 (04:18:06)

"결합한다는 것은 공유한다는 말이다. 즉 사건의 원인은 언제나 공유에 있다."

http://gujoron.com/xe/1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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