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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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90 vote 0 2019.05.31 (11:42:08)

    예술은 만남이다

 

    그냥 성의없이 조잡하게 만들어 놓고 대충 말로 때우려는 북유럽식 개념미술 경향은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단순성의 미학이 아니다. 예술은 물리학이다. 에너지를 통제하는 기술이다. 에너지는 어떤 둘이 만나려 하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이해가 안 되면 전기줄을 잘라서 붙여보라. 스파크가 일어난다. 지지직 하고 튀는게 있다.


    실제로 스파크가 일어나야 한다. 마음에 불똥이 튀어야 한다. 전율해야 한다. 기운을 느껴야 한다. 문제는 반사회성이다. 우리편이 아니라 적군이다. 이우환이 점 하나 찍었는데 그걸 보고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해를 못하는게 아니라 우리편이 아닌 적이다. 토벌되어야 한다. 반란군의 무리다. 그들은 왜 항명을 자행할까?


    그들은 자기네를 돈 내고 온 고객님이고 작가를 물건 파는 점원이나 알바생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요리되지 않은 음식을 앞에 놓고 황당해하는 손님과 같다. 이 요리는 먹을 수 없잖아.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달라고. 점 하나 찍었으니 얼마나 쉽냐? 점 두 개를 찍었으면 과부하 걸려서 머리가 터져버리냐? 어렵다고들 한다.


    요리를 못 먹겠다는 말이다. 생선은 익지 않았고 새우는 구워지지 않았다는 거다. 여기서 도드라지는 갑을관계다. 당연히 작가가 갑이고 관객은 제자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목적은 스승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한 수 배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다빈치 요리사 너 일루와봐. 도대체 이게 요리가 된 거냐고? 익혀야 먹어주지.


    이런 소리 하는 새끼는 단매에 쳐 죽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은 다빈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은 다빈치의 작품을 볼 자격이 없다. 어떤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작가의 마음의 제자가 되어 그 작품을 복제할 자격을 획득한다는 말이다. 그게 곧 영감이다. 다빈치의 영감을 얻어갈 자격이 있을까? 


    내가 작가라면 제자가 아닌 자는 받지 않는다. 내 제자도 아닌 어문 넘이 와서 내 작품을 복제하겠다고? 미친 거다.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구조론의 제자가 아닌데 와서 구조론의 아이디어를 빼먹겠다고? 그런 자와 대화하지 않는다. 추상미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자는 작가를 요리사로 하대하고 자신을 귀족으로 대접한다. 


    요리사 위에 군림하는 자다. 내가 백종원인데 황교익이 와서 얌마 이걸 요리라고 했어? 이려면 밥주걱으로 아구통을 날린다. 작가는 요리사가 아니며 그러므로 스승인 것이며 스승은 제자에게 숙제를 내주는 것이며 숙제를 하는 방법은 스승의 작품을 복제하는 것이다. 똑같이 복제하면 표절이므로 창의적 재해석이 요구된다.


    그것이 영감을 받는 것이다. 다빈치의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스승 다빈치에게 숙제를 받는 것이다. 그러한 본질을 알아채야 한다. 예술은 일단 단순해야 한다. 손님을 맞이할 때 집을 청소하는 것과 같다. 어수선하면 손님이 불쾌하잖아. 선은 굵어야 하고 조각은 탱탱해야 하고 되도록 어린이의 마음에 결을 맞추어야 한다.


    뱅크시의 낙서는 중학생이 하는 것이고, 키치는 고딩들이 하는 짓이다. 제프 쿤스의 풍선은 어린이의 것이다. 여기서 서열이 매겨지는 것이다. 뱅크시는 제프 쿤스를 이길 수 없다. 중딩은 초딩을 이길 수 없다. 뽕짝은 할배들이 하는 것이므로 예술로 치지 않는다. 기교나 부리는 짓은 장사꾼인데 그건 알바생이 하는 짓이다.


    어린이는 무한의 가능성이 있다. 규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만남의 순간과 같다. 만남의 장은 비워져야 하며 비워짐은 어린이의 마음과 같은 무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냥 성의없이 조잡하게 조금 해놓고 말로 때우려는 새끼는 반란군의 새끼다. 점을 하나 찍었는데 필사적으로 정성을 기울여 와장창 찍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식으로 해설하는 개돼지들 있다. 무슨 개소리냐고. 그냥 점이다. 점을 정성 들여 필사적으로 찍으면 안 된다. 점 하나면 만나고 점 둘이면 이별이다. 남자가 둘이면 삼각관계잖아. 벌써 판이 깨졌다. 점 하나를 찍는다는 것은 대칭의 교착점의 밀도의 긴장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두 사람이 만나 시선이 부딪힐 때 접점이다.


    그 살벌함을 드러내야 한다. 예술은 그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다. 워낭소리는 단순한게 아니고 무성의한 거다. 할배들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안봤으니 더 말하지 않겠지만 예술이 아니고 장삿속이다. 전쟁영화든 멜로영화든 코미디든 스릴러든 한동안 극장에 안 걸린 장르를 극장에 걸면 일단 팔린다. 그게 타이밍이다.


    워낭소리가 흥한 것은 전원일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전원일기가 끝나고 수십 년이 되어 사람들의 추억이 가물가물할 때 타이밍 좋게 내걸어 김회장네 누렁이를 다시 보니 반갑네 이런 거다. 똥이다. 속편 찍으면 백퍼 망한다. 이런건 복제가 안 되므로 예술이 아닌 거다. 반드시 복제되어 세력을 이루고 도도하게 흘러가야 한다.


    적절히 비어 있는 만남의 장에서 스치듯 불꽃이 튀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의 다음 단계가 제안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남의 장에서 정신 사나운 옷을 입으면 안 된다. 고도의 긴장상태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복제가 되어도 표절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건의 기에 서는 것이며 그럴 때 무리가 따른다.


    모든 예술가는 세잔을 표절하고 있다. 피카소만 세잔을 베껴먹은 것이 아니다. 한국의 김환기도 베껴먹었다. 세잔이 평면에서 입체로 도약했고 제프 쿤스는 거기에 밀도를 더한 것이다. 입체는 3차원이고 밀도는 4차원이다. 베끼되 차원이 다르게 베껴먹으면 대가로 칭송받는다. 스승은 그런 제자를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자극을 해서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급자는 손재주로 감탄사를 끌어내고 중급자는 아이러니로 미소를 끌어낸다. 상급자는 에너지로 일대사건을 끌어낸다. 하급자의 감탄사는 현장에서 소비된다. 극장에 돈 내고 온 관객은 멜로와 액션과 코미디와 신파에 발리우드의 춤과 노래까지 종합선물세트를 원하는 것이다.


    몇 푼 던져준 엽전으로 광대를 놀리듯이 내가 돈 냈으니 재주부려 봐 하는 식으로 예술을 대한다면 적이다. 예술이 어렵다고 말하는 자들은 돈 낸 자의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는 역사의 진보가 추동하는 근원의 힘에 빨대를 꽂을 자격이 없다. 제자가 될 수 없다. 내가 돈냈다고 하는 마음에 숨은 반사회성 때문이다.


    작가와 관객은 반대편에 선다. 맞은 편에 서서 대칭을 이루면 이미 망해 있다. 반역이다. 제자는 스승의 등 뒤에 서야 한다.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서 있는 위치가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팝콘을 씹으면서 나를 웃겨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예술을 말할 자격이 없다. 진보의 팀에 가담할 수 없다. 동료가 될 수 없다.


    자신이 작가라고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적으로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 속에서 그 사건의 진행방향을 슬쩍 틀어버린다면 예술이다. 일어나 있는 사건을 증폭시키는 링크 하나를 새로 연결하는 것이다. 세게 불을 질러버려야 한다. 인류가 모두 불타오를 때까지. 




[레벨:4]나나난나

2019.05.31 (12:04:41)

뜬금없이 오타 제보 (?)요..

개돼지가 맞는데 개되지로 되어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5.31 (12:56:59)

감솨요.

말 나온 김에 추가 있습니다.

[레벨:10]sita

2019.05.31 (16:04:24)

예스! 아이들은 천방지축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예술가도 마찬가지인듯.
그들의 뇌에서 자유롭게 놀다가 어느샌가
리듬이 생겨,밸런스를 잡고,필연적인 그 무엇의
재현에 사로잡힌다. 새로운 도구를 찾는다

대중문화를 자유자재로 차용한 쿤스의 작품은
고급/저급문화,예술품/상품의 편차를
재구성해서 뭐뭐인듯한...와~토끼가 쩔라
세련됐잖아 하트도 열라 깔끔심플하고
뭐뭐 좀 있는듯한.

대량생산품인,공산품을 깔끔하고 세련되고
멋지고 화려하게 번쩍이는 완벽함?으로
워홀이 사라지게 한 원본이 갖는 아우라를
다시 끼워넣었고, 그 아우라를 다시 묘사해
재현하는, 그것에 맞는 이름을 찾아 나서는,
DNA에 새겨진 게임.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9.05.31 (19:31:16)

반성도 되고 배웁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6.02 (03:24:17)

"자신이 작가라고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적으로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http://gujoron.com/xe/109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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