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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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28 vote 0 2019.05.24 (08:48:24)


    우주를 믿는가?


    석가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고 한다. 당돌한 녀석이다. 땅이 밑으로 푹 꺼지면 어쩌려고 그렇게 무모하게 전진했다는 말인가? 기우라는 말 들어보지도 못했나?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면 어쩔건데? 영화 부시맨 이야기다. 부시맨을 감옥에 가두었더니 한 달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부시맨 산족은 사막을 지날 때 한 달씩 굶어도 죽지 않는다. 부시맨은 건물 속에 갇힌 일이 처음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미 죽어서 괴물의 배 속에 있다고 믿은 것이다. 건물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공물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건물이 삼켜버렸으니 이미 죽었다. 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우주라는 건물에 갇혔다.


    당신은 태연히 우주의 존재를 믿는가? 자신이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가상현실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대가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가상이고 외계인들이 실험실에 갇힌 당신을 지켜보며 킥킥대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어야 정상이 아닐까?


    태연히 앉아서 무려 호흡을 하며 여유 부리고 있다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거다. 당신은 우주의 존재를 믿는가? 자신이 실재한다고 믿는가? 모든 것이 가상이 아니라고 확신하는가? 자신이 실험실에 갇힌 모르모트가 아니라고 확신하는가? 그 천연덕스러운 믿음의 출처는 어디인가? 무의식중에 태산같이 믿고 의지하는 것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우주 하나를 받아서 태어나는 것이다. 굉장한 선물이다. 이 정도 우주를 만들려면 아인슈타인급 공돌이 일억명을 갈아넣어서 300만년이 걸려도 쉽지가 않은 거다. 완성도가 높다는 말이다. 걸작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일주일 만에 만들었다면 부실공사가 아닌가? 그렇게 날림으로 만들어도 되나? 믿을 수 있나? 


    나는 사람들의 천연덕스러운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우주를 믿는다. 땅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7일 만에 날림으로 만든 우주라면 7일 이내에 망할 수도 있는거 아닐까? 내일 해가 뜬다고 믿을 수 있나? 모든 것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장자의 꿈이 아니라는 확신의 근거는 있는가?

 

    나는 이 우주의 완성도를 이야기한다. 믿음의 출처는 그 완성도이다. 당신은 교회에 가기 전에 이미 믿고 있다. 절에 가기 전에 이미 믿고 있다. 믿지 않는다면 벌벌 떨면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할 것이다. 감옥에 갇힌 부시맨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울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무려 믿고 있다. 우주의 완성도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공들여서 만든 작품이다. 그 작품이 아름답다. 그 진실됨에 비하면 귀신, 유령, 영혼, 내세, 천국, 윤회, 환생 따위는 개허접이다. 그딴 삿된 것을 믿는다면 그 우주의 완성도를 해치는 짓이다. 말로는 일신교라지만 실제로는 귀신 유령 영혼 내세 천국 부활 따위를 믿는 다신교다. 우주를 믿지 않는 행동이다. 그것은 대단한 배반이다.


    말하자면 각자 멋진 우주를 하나씩 챙겨 받았는데 멋진 보석을 하나 선물받았는데 보석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하느님 믿습니다 하며 되레 반납하고 있다면? 우주 안으로 들어가보지 않고 겨우 선물받은 완성도 높은 우주를 내팽개치고 바깥에서 내세를 찾고 천국을 찾는다면? 이 우주를 배반하고 이 우주에 실망했다는 식이라면? 


    왜 그대는 이 멋진 우주의 상자뚜껑을 열어보지 않고 우주의 비밀을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이 받은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고 다른 우주를 찾으며 내세 천국 귀신 유령 환생 윤회 따위 허접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게 괘씸하다. 우주의 진실로 한 걸음 다가간다는 것이 백만 배는 더 의미가 있다. 보람이 있다. 


    전율하게 된다. 선물을 받았다면 상자를 끌러서 그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는게 예의에 맞다. 그런데 보라. 우리는 아인슈타인급 공돌이 1억 명을 갈아넣고도 300만년은 걸려 만들었을 우주종합선물세트를 받고도 상자를 끌러보지도 않고 팽개쳐 둔 채 윤회, 환생, 해탈, 내세, 천국 어쩌고 개소리하며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이 우주에 실망했다는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환수하자. 선물한 우주를 반납할 일이다. 부름이 있으므로 응답이 있어야 한다. 선물을 받았으면 상자를 열어 보물을 꺼내고 손가락에 끼어보고 목에 걸어보고 가슴에 달아보고 해야 한다. 우주의 내용물을 찬찬히 뜯어보아야 한다. 나는 우주 하나를 통째로 받은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다.


    이야기는 이 안에 다 있다. 우주 안에서 답을 찾는게 맞다. 내세타령은 현실우주의 부정이다. 불렀는데 응답하지 않는 녀석은 나쁜 새끼다. 하이파이브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모른 척 생까고 지나간다면 싸대기를 올려붙여야 맞다. 친구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무려 신이 그대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려는데 말이다. 호응해야 한다.


    기껏 비싼 우주 하나 선물해 줬더니 현세 싫어 내세 좋아하며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괘씸하다. 배신이다. 우주를 도로 반납시켜야 한다. 우주를 떠나 다른 데로 보내버려야 한다. 이 우주의 완성도가 백만 배는 중요한 것이다. 피아노를 선물받았는데 연주하지 못한다면 낭패가 아닌가? 의미는 그 우주를 연주하는 데 있다.


    고백하라. 당신이 무언가를 믿는다면 이 우주의 완성도를 믿는 것이다. 그 완성도를 향하여 한 걸음 더 다가가지 않고 진상부리며 내세나 천국으로 바꿔 달라고 하면 배반이다. 그 완성도를 알아볼 자기 존재의 부정이다. 자기파괴다. 인간은 그렇게 망한다. 의미를 잃고 가치를 잃고 광채를 잃고 싱거워지고 탈색하고 희미해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5.25 (02:31:31)

"당신이 무언가를 믿는다면 이 우주의 완성도를 믿는 것이다. ~ 의미는 그 우주를 연주하는 데 있다."

- http://gujoron.com/xe/109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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