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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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37 vote 0 2019.05.07 (15:37:03)


   실체냐 관계냐?


    천동설과 지동설의 관계다. 세계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근본적인 두 가지 상이한 관점이다. 내용이냐 형식이냐다. 내용은 안을 보고 형식은 밖을 본다. 예컨대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한다면 실체는 그 집에 좋은 무엇이 있느냐다. 집에 금송아지라도 한 마리 있다면 좋은 집이라 하겠다.


    관계는 그 집이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느냐를 본다.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면 가치가 올라간다. 같은 30평짜리 건물이라도 강남은 비싸고 강북은 싸다. 구조론은 관계에 주목한다. 물론 실체가 중요할 때도 있다. 과일이라면 겉보기 때깔만 볼 것이 아니라 속이 잘 익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옷을 입고 교언영색으로 꾸미면 좋아 보이지만 허당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작위가 개입한 결과다. 자연은 거짓이 없다. 때로는 내용도 중요하나 형식이 갖추어진 다음이다. 인간이 꾸며낸 거짓 형식과 혼동하면 안 된다. 절대적으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선과 악의 판단에 대입할 수 있다. 구조론은 어떤 대상을 이해할 때 관측대상 내부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외부환경과의 상대적인 관계로 본다. 내용이 아닌 형식을 보는 것이다. 사람 내부의 심리나 기질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소속된 집단이나 환경과의 관계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마음 내부의 목적, 의도, 야망, 행복, 쾌락이 아니라 고립, 소외, 평판, 지위, 권력 등으로 나타나는 집단 무의식으로 본다. 물론 내부의 사정도 판단에 참고가 된다. 외부의 사정이 내부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차별을 받으면 내부에 분노가 쌓인다.


    내부를 보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작은 부분이다. 결정적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외부에서 차별이 여전한 데 내부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으면 폭발한다. 막연히 분노를 내려놓아라 하는 식의 내부대응은 임시방편이 될지언정 반드시 재발한다. 화병이 생겨난다.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자존감, 콤플렉스 등으로 나타나는 사람 내부의 심리적인 환경도 있고 주류냐 비주류냐 하는 집단과의 관계설정 문제도 있고 가난이나 질병과 같은 생존환경 문제도 있다. 내부요인도 있고 외부영향도 있지만 문제해결의 답은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악은 왜 악한가? 대개 뚜렷한 자기 계획이 없이 상대측의 반응을 보고 2차적으로 자기 행동을 결정하려고 하는 게 악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끌어낼 목적으로 폭주하게 된다. 사회가 반응해주면 재미 들려서 더 그러고 반응하지 않으면 반응할 때까지 괴롭히는 게 보통이다. 악은 실체가 없다.


    대신 관계가 있다. 그 관계는 나쁜 관계다. 게임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 자기 계획이 없고 자체 에너지가 없다. 물론 나쁜 짓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져 악의를 품지만 처음에는 자기계획이 없으므로 어쩔줄 몰라서 나쁜 짓을 한다. 악당이 집념을 가지고 야망과 계획을 품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주도할 능력이 없는데도 주도권을 잡으려고 무리하면 상대측의 반응에서 힌트를 얻어 자기행동을 결정하고자 과잉행동을 하는 것이 악으로 나타난다. 혹은 사회화 단계에서의 계속된 실패로 상처를 입어 집단의 개입을 공격행위로 착각하고 과잉방어하는 행동이 악으로 나타난다.


    강아지는 생후 4개월이 중요한 사회화 기간이다. 사람이라면 유년기다. 중요한 사회화 시기에 좌절을 겪고 상처 입으면 사회적 적응력이 떨어진다. 그들은 외부에 대해 잘못 대응을 하게 되며 그것이 악으로 나타난다. 즉 악은 선의 실패일 뿐 고유한 속성이 없다. 악의 기운 같은 것은 없다.


    악의 물질은 없다. 악마의 입김은 없다. 반대로 선은 고유한 의도와 목적과 계획이 있다. 선은 본질이 있으나 악은 본질이 없다. 그러므로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실패하면 악이 된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면 악이다. 사회경험 부족으로 물정을 모르는 진보가 좌절하게 된다.


    그들은 변절한다. 이재오, 김문수, 심재철이 그들이다. 선은 인간의 사회성의 반영이다. 집단이 모이면 반드시 외부로 난 방향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자체 모순으로 붕괴한다. 집단이 전진하는 방향은 진보다. 진보는 생산력의 증대 방향이다. 사회의 진보방향과 맞는 행동이 선이다.


    선은 목적이 있다. 에너지가 있고 방향이 있고 집단이 있다. 이렇듯 세상을 관계로 보는 것이 구조론이다. 선악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kilian

2019.05.08 (04:53:46)

"집단이 전진하는 방향은 진보다. 진보는 생산력의 증대 방향이다. 사회의 진보방향과 맞는 행동이 선이다. 선은 목적이 있다. 에너지가 있고 방향이 있고 집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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