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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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76 vote 0 2019.04.25 (17:36:41)

     

   지식이란 무엇인가?


    안다는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보통은 무엇을 안다고 말한다. 앎의 대상이 되는 무엇이 있다. 그런데 과연 그 무엇이 있을까? 화성의 모래알 숫자는 몇 개일까? 그런데 과연 화성에 모래알이 헤아릴 수 있는 낱개로 고착되어 있을까? 왜 그걸 헤아리려고 하지? 헤아려서 뭣하게? 화성의 모래알은 낱낱으로 무엇이 아니다.


    모래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단히 생성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한강에 물방울이 분자 단위로 몇 개인지 알 필요는 없다. 물은 모여서 크게 세력을 이루고 있다. 기세를 이루고 있다. 에너지와 방향성을 감추고 있다. 자체의 질서를 감추고 있다. 매우 용을 쓰고 있다. 그러므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물의 흐름을 다스려야 이긴다.


    물분자 숫자는 아무러나 상관없는 것이다. 애초에 세상은 무엇들의 집합이 아니므로 무엇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세상은 무엇이 아니고 무엇일까? 의문사 who, what, when, where 들에는 모두 wh-가 붙어 있다. 원래는 C 발음인데 K나 Q로 변한다. 쿠오바디스Quo Vadis의 쿠다. 우리말로 하자면 '까?'에 해당된다.


    Question의 Que-다. 고개를 갸웃하는 원시인의 보디사인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는 동료를 부르는 비명소리 call에서 왔다.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call을 날려서 동료를 부르는데 거기서 '까?'나 의문사의 wh-발음이 나온 것이다. 한 명이 call을 날리면 동시에 모두 call을 날려서 부족민이 일시에 모여드는 것이다. 그것이 까?다.


    '뭐지?' 하고 일제히 모여든다. 보초가 왜 콜을 날렸느냐고 who, what, when, where를 묻는 것이 의문사다. What은 Que?-at이라 할 수 있다. call+At인데 At은 어떤 대상에 딱 달라붙어 접촉된 것이다. 혀를 입천장에 붙이는 보디사인이다. 그래서? '무엇'은 대상이 인간에게 딱 연결되는 것이다. 대칭에 의해서 만유는 연결된다.


    뭐야? 하고 묻는다면 나와 어떻게 대칭되어 연결되는 call이냐다. 콜은 부름이니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 부름이냐다. 어떻게 나를 호출했는가다. 세상의 모든 무엇은 그냥 무엇이 아니고 나와 연결하여 나를 딱 지목하여 나를 호출하는 무엇이다. 도둑에게는 경찰이 뭐다. 여당에게는 야당이 뭐다. 자식에게는 부모가 뭐다. 뭐가 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호출하는 무엇이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호출하는 무엇이다. 세상은 모두 대칭되어 있다. 전방위적으로 대칭되어 있다. 산에 가면 산으로 바다에 가면 바다로 대칭된다. 세상은 대칭으로 서로를 호출하여 불러낸다. 그리고 맞대응한다. 의사결정한다. 그것이 세상의 무엇이다. 짝지어 서로를 부르는 것이 무엇이다.


    인간의 인식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사색해 보고 얻은 결론은 인간은 문제에 대해 답을 모르는게 아니라 문제와 답의 관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는 짝짓기 관계를 모르더라. 만유가 서로를 호출한다는 사실을 모르더라.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통제가능성이다. 통제가능성을 얻으면 그만이다.


    화성의 모래알 숫자가 몇인지 셀 필요는 없다. 모래알과 내가 서로 짝지어 호출하지 않는다. 모래알을 정의하기도 어렵고 정의해도 의미없다. 의미없는 것은 배척된다. 의미는 연결이다. 연결되는 것만 쳐주는 것이다. 모래알은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소멸되므로 낱낱이 연결될 수 없다. 모래알이 몇이냐 하는 질문은 불성립이다.


    호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통짜 덩어리로 되어 에너지를 태우고 있다. 낱개가 아니라 무리로 대응된다. 호출해도 무리로 호출한다. 호출의 호呼도 콜에서 나온 말인 게다. 인간은 다만 계를 이룬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에너지는 낱개에 없고 무리에 있다. 물은 파도에 있고 바람은 기압에 있다. 


    에너지를 통제할 때 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대칭을 통해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 지구를 통제하려면 지구가 하나 필요하다. 여당을 통제하려면 야당이 필요하다. 대부분 답을 모르는게 아니라 문제를 모른다. 문제를 명확히 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계의 통제가능성이다. 통제할 필요가 없는 것은 통제하지 않는다.


    통제가 물리적 지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맞대응할 수 있는가다. 부르고 응답할 수 있느냐다. 짝지으면 된다. 안다는 것은 합리적인 대응이다. 시간여행을 하겠다면 무리다. 넌센스다. 시간여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여행은 최적의 대응이 아니다. 나는 1+1=2가 싫어. 1+1=3으로 하는 방법은 없나? 이런 개소리는 배척된다.


    만유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를 건드리면 모두 자리를 바꾸게 된다. 그러므로 부분의 하나를 바꾸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통제해야 하는 것이며 부분을 왜곡하는 것은 합리적 대응이 아니다. 부분은 에너지가 없어 짝짓지 못한다. 대칭의 짝짓기를 통해 중심과 연결되면 잘 통제된 것이며 그것이 전부다.


    부름에 응답하면 되고, 자극에 반응하면 되고, 대칭에 호응하면 되고, 연주에 앵콜이면 되고, 만남에 선물이면 되고, 게시에 리플이면 되고, 원인에 결과하면 되고, 프로포즈에 수락하면 된다. 고백했는데 따귀 맞으면 실패다. 배고플 때는 먹으면 되고, 똥마려울 때는 화장실 가고,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징벌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것이 의미다. 각자는 부름과 응답으로 의미를 달성하여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하면 된다. 남의 사건에 빈대붙지 말고 자기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남을 이기려는 작은 사건 말고 이미 일어나 있는 천하의 큰 사건에 가담해야 한다. 에너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본능과 생존본능을 따르지 말고 자기 게임을 일으켜야 한다.


    미학의 논리로 자기 게임은 가능하다. 미학은 자체의 완결성을 따라가는 시야를 획득하기다. 존재는 사건이므로 기승전결로 치고나가는 미학이 있다. 건축도, 조경도, 레저도, 오락도, 미식도, 패션도, 영화도, 유행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적으로 남이 원하는 행동, 집단이 요구하는 행동을 하는게 타인에 의해 마음이 조종되는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다만 안정되려고 한다. 고유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것은 불안정해질 수 없고 불안정한 것은 안정될 수 있다. 자체 에너지가 안정에 도달할 때 행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짝을 찾을 때 계는 안정된다. 이겨서 의사결정권을 획득한다. 불안정한 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 이기지 못하고 지게 된다.


    아는 것은 부름에 응답하는 방법으로 대상과 연결하여 맞게 대응하여 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계 내부의 에너지의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다.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에 서는 것이다. 승전결로 가면서 안정된다. 무리한 것은 배제된다. 불가능한 것은 배척된다. 억지는 곤란하다. 나도 로또당첨 시켜줘 하는 식의 요구는 무리한 거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문제는 도구다. 대칭은 반드시 축이 있으므로 도구가 필요하다. 축이 의사결정의 특이점을 형성한다. 남녀가 만나도 중매쟁이가 필요하다. 중매쟁이 없이 인터넷으로 만나도 인터넷이 중매쟁이다. 축은 반드시 있다. 도구는 축을 이루고 대칭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너와 나를 연결한다.


    논리는 사유의 도구다. 구조는 세상의 도구다. 안다는 것은 대상과 연결하는 도구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상은 무엇이고 무엇은 부름과 응답으로 호응하여 인간의 인식과 연결되는 것이며 연결된다면 이미 아는 것이다. 책에 있는 지식을 낱낱이 머리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사전이 연결도구가 된다.


    백과사전이 없다면? 도서관이 없다면? 글자를 못 읽는다면? 연결되지 않는다. 호응하지 못한다. 대응하지 못한다. 인간은 도구가 없으므로 대상과 연결되지 않고 연결되지 않으므로 통제하지 못한다. 이기지 못한다. 의사결정하지 못한다. 기에 서지 못한다. 도구를 획득한 순간에 아는 것이다. 비로소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박사들이 박사인 이유는 박사는 친구도 박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몰라도 동료에게 물어보면 된다. 학계의 공유되는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앎은 그런 것이다. 도구가 있다. 박사의 도구는 박사들의 집합이다. 의사의 도구는 의료계다. 병사의 도구는 군대다. 우리는 손에 쥔 작은 도구를 알고 있지만 사실은 큰 도구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도구는 국가다. 인간에게 지식의 도구는 학계의 시스템이다. 의미는 그 시스템에 있다. 구조론이 지식의 도구가 되므로 구조론이 없는 세계는 무지의 세계다. 구조론에 가까운 것은 논리학과 수학이다. 그러나 지식의 일부를 구성할 뿐이다. 의사에게는 왕진가방이 도구가 된다. 병사에게는 총이 도구가 되겠다. 충분한가? 


    목수에게는 망치가 도구가 되겠고 농부에게는 낫이 도구가 되겠지만 틀렸다. 그것은 작은 도구다. 부분의 지식을 얻을 뿐 전체의 지식을 얻지 못한다. 자동차만 있으면 되는가? 도로가 있어야 한다. 총만 있으면 되는가? 군대가 있어야 한다. 큰 도구가 진짜다. 낫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땅이 있어야 진짜 농부가 된다. 


    표만 있으면 정치가 되겠는가? 신뢰가 있어야 한다. 벽돌만 있으면 집이 되겠는가? 모르타르가 있어야 한다. 라디오만 있으면 되겠는가? 방송국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가진 지식의 도구는 언어와 문자와 도서관과 수학과 논리학이다. 부족하다. 구조론이 있어야 한다. 총만 가진 병사가 비로소 군대를 얻는 격이니 곧 시스템이다.


    총은 덩어리를 부수는 도구다. 반대로 결합시키는게 진짜다. 인간의 지식획득은 대상을 관찰하고 칼로 쪼개고 망치로 부수고 작게 나누는 방법이었다. 이것으로 집을 짓지 못한다. 크게 얽으려면 대칭과 축을 장악해야 한다. 자연은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로 되어 있다. 인간은 이 중에 정보를 알면 곧 뭔가를 안다고 믿는다. 


    그것은 조금 아는 것이다. 차와 배와 비행기 따위를 구분할 줄 알면 안다고 믿는다. 차를 운전할 줄 알아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정보는 눈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대응하고 공간적으로 장악해야 한다. 물질로 맞서고 에너지로 통제해야 한다. 사건의 전모를 알아야 아는 것이다. 조금 알아놓고 다 아는듯이 말하면 안 된다. 


    반면 근본을 알면 세부를 몰라도 된다. 세부의 문제는 그때그때 주변의 수단을 동원하여 대응하면 된다. 모르면 동료에게 물어보면 된다. 동료에게 물어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스템을 조직하여 대응하면 되는 거다. 계통을 연결하면 되는 것이다. 존재는 사건이므로 지식도 사건으로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4.29 (04:17:46)

"정보는 눈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대응하고 공간적으로 장악해야 한다. 물질로 맞서고 에너지로 통제해야 한다. "

- http://gujoron.com/xe/108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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