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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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63 vote 0 2019.04.11 (11:16:26)

    why의 진실


   '소금이 왜 짜냐?' 하고 묻는다면 사실이지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검색하면 나온다. 염화이온Cl의 반응이다. 구조론으로 본다면 숨은 전제를 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걸 소금이라고 그러던?', '그런데 그게 소금이 맞아?'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근데 누가 소금이 짜다고 하던?' 하고 반문해도 된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어깃장 놓고 반문하면 말싸움이 된다. 특히 정치토론을 할 때는 당연한 사실을 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과연 그것이 소금이 맞는가?' '과연 그게 짠 것인가?' '소금이 짠 것인가 아니면 짠 그것이 소금인가?' 


    이렇게 추궁해 들어가야 한다. 소금이 짠 것이 아니고 '짠 그것'이 소금이다. 이는 구조론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짠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을 질문해야 한다. 짜다는 것은 염화이온Cl의 전기화학적 반응이다. 신맛은 수소이온의 반응이고 짠맛은 염화이온이고 단맛은 당 성분이다.  


    다만 쓴맛은 물질의 독성을 경고하는 메커니즘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한다. 중독성도 있다. 결국 맛이 뭐냐에 이르러야 한다. 매운맛, 떫은맛은 물리적 자극이지 맛이 아니라고 한다. 매운 것은 피부를 자극하여 열을 내는 것이고 떫은 것은 탄닌성분이 입천장이나 혀에 달라붙어서 잘 안 떨어지는 것이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화장실에서 똥꼬가 얼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글루탐산의 감칠맛이 진짜 맛이다. 다른 맛은 달다 쓰다 하고 표현할 수 있지만 혀를 쩝쩝거리게 하는 감칠맛은 적당한 단어가 없으므로 그냥 맛있다고 하는 것이다. 감칠맛은 먹어봐야 아는 것이 보통이므로 음식맛은 보통 감칠맛을 말한다. 


    시원한 맛, 뜨거운 맛도 있다. 어른들이 뜨거운 것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게 포인트다. 요즘은 중국집 불맛이 유행이다. 결론적으로 맛은 산과 알카리를 비롯한 물질의 전기화학적 신경반응을 뇌가 감지한 것이다. 그래서?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스템이 있다.


    산도가 증가하면 신맛을 느끼고 당도가 증가하면 단맛을 느끼는 메커니즘이 있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 에너지를 태우고 있으므로 조절이 가능하니 통제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원인이다. why의 문제는 보통 우리가 '왜?'라고 묻는 것은 그러한 감추어진 메커니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보통 우리가 왜?라고 하는 것은 어제는 안 그러더니 지금은 왜 그러느냐는 식이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한다. 5분 전까지 괜찮았는데 지금 복통을 호소하니 그 5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다. 그런데 과연 그 5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why는 위험하다. 아이에게 왜?하고 다그치면 안 된다.


    아이가 기분이 우울한 이유는 본인도 모르는 것인데 왜? 하고 다그치면 엉뚱한 말을 지어내게 된다. 진짜 원인은 멀리 있고 환경적인 것이며 바깥에 있다. 그러므로 왜? 하고 묻는 태도는 진실에 다가서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물론 왜?라고 물어야 할 때도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보통 무언가 작용했다고 여긴다.


    보통은 A와 B 사이에 무언가 개입하여 틀었다고 착각한다. 누군가 음모를 꾸몄다는 식의 접근이다. 현실에서 많이 경험한다. 뭔가 있는데 누가 몰래 작용한다. 먹는 밥에 몰래 무언가를 뿌렸다. 예컨대 조미료를 넣거나 밥을 태우거나 뭔가를 작용해서 결과가 도출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된 게 이명박 때문이다 혹은 간첩 때문이다 하고 중간에 누가 끼어들어 작위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지레짐작한다. 춘향과 방자가 사귀는 것은 월매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숨은 전제를 캐야 하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중간에 개입해서 작위하는 데서 답을 찾기 때문이다.


    세상을 주로 음모, 계략, 흉계, 술수 이런 관점으로 보는 태도인데 주말 드라마 사극에 흔히 나오는 저주, 굿, 독살 따위다. 그런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한다. 꼬맹이가 질문한다. '엄마 저건 왜 그래?' 이때 '아 그건 말이야. 누가 몰래 요렇게 해서 그렇게 된 거야.' 하고 말해주면 쉽게 납득한다. 그런데 거짓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귀는 것은 사랑의 신 큐피트가 몰래 화살을 쏘았기 때문이야.'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해서 꽃샘추위가 오는거야.' 아 이거 잼있다. 이런거 잘 납득한다. 그런데 거짓말이다. 에너지를 처리하는 시스템이 작동해서 특정한 결과가 나오는 거지 누가 중간에 작위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해서 그렇다고 하면 '근데 엄마 시베리아가 뭐야?' '근데 아빠 고기압이 뭐야?' 피곤하다. 겨울에 일조시간이 짧아져서, 햇볕이 그만큼 덜 비쳐서, 기온이 떨어져서, 공기의 운동에너지가 감소해서, 저기압이 발생해서, 공기가 북극 주변에 잔뜩 몰려서 너무 많아진 공기가 왕창 밀고 내려온다.


    이걸 어떻게 일일이 다 설명하느냐고. 대기의 온도가 내려가면 저기압이 되어 공기가 모이고 공기가 너무 많이 모이면 고기압이 되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는 전 지구적인 대기순환 메커니즘이 있는 것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 지구가 온난화되면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서 북극의 바다기온이 내려간다.


    바다기온이 내려가면 빙하가 와서 지구는 얼어붙는다. 그러므로 지구가 온난화되면 빙하가 오는데 그냥 지구가 온난화되어 더워죽는다고 해야 알아듣지 조만간 지구가 온난화되어 얼어 죽는다고 말하면 알아듣겠냐고? 세상은 메커니즘인데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당되는 단어도 없다.


    닫힌계를 부여하고 사건 전체를 파악하면 에너지를 처리하는 시스템에 의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닫힌계도 보이지 않고, 에너지도 눈에 보이지 않고, 사건의 기승전결도 보이지 않고, 시스템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포기하게 되는 거다.


    구조론은 남들이 다들 포기하는 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고 덤빈 결과다. 세상이 근본 어떤 은밀한 개입에 의한 작위, 비틀기, 농간, 술수, 방법,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결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손자병법을 좋아한다. 


    작위하고 조작하고 협잡하고 음모하고 술수하면 이긴다고 가르친다. 물론 부분전술로는 먹힌다. 그러나 큰 전쟁이 그런 꼼수로 결정된 일은 역사적으로 없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어떤 꼼수를 써도 옥동자는 최홍만을 힘으로 이길 수 없다. 팬들은 용규놀이 이용규, 슈퍼소닉 이대형 이런 자잘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스포츠는 근본 그런 얕은 수작으로 이길 수 없다. 한두 게임을 잡을 수 있겠으나 큰 흐름을 그르치게 된다. 양념이 되어야 할 조연이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면 기세를 잃고 흐름을 놓치고 관성력을 잃는 것이다. 주도권을 뺏긴다. 결국 남 좋은 일 하게 된다. 손자병법은 양념일 뿐 전쟁의 근본이 아니다. 


    일본군이 정신력을 외치며 반자이 어택을 해봤자 원자탄 한 방에 박살나는 것이다. 힘으로 이겨야 진짜다. 기술은 절대 파워를 넘을 수 없다. 메이저리그도 요즘 볼을 띄우는 파워야구가 뜨고 있다. 답은 근본에 있지만 사람들은 근본을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으므로 대충 둘러대는 것이며 그것은 거짓말이다.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면 범위를 좁혀 자동차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한다. 왜? 자동차 밖에 도로상태나 신호등이나 보행자에게 책임이 있다면 한없이 일이 커져버리기 때문이다. 성적이 떨어졌다면 공부를 안 했다거나 개인에게 답을 찾지 선생님이 잘못 가르쳤다거나 교육부가 잘못했다거나 국가의 잘못이라면?


    일이 한없이 커진다. 그러므로 인간은 두려워하는 것이며 되도록 사건 규모를 줄이려고 한다. 되도록 시스템의 잘못이 아닌 개인의 탓이라고 범위를 좁힌다. 특히 누가 중간에 개입해서 조작했다고 여긴다. 우리애가 빵점을 맞은 이유는 친구가 오락실 가자고 꼬셨기 때문이다 하는 식으로 남탓해주면 좋아한다. 


    문제해결이 쉽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친구와 놀지 못하게 막으면 해결된다. 참 쉽네. 결국 인간을 사전에 답을 정해놓고 문제해결이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며 진실은 엄두가 안 나기 때문에 아예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이며 문제를 키우기보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야구를 못 하면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면 좋아하고 좋은 지도자를 못 만나서라고 말해주면 싫어한다. 노력은 당장 하면 되는데 좋은 지도자는 어떻게 만나? 당장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범위를 좁히려고 하는 것이다. 숨은 전제를 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사건을 좁히고 보는 습관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사건을 키워 전모를 보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한 건을 해결하면 두루 해결된다. 소금이 짠 이유를 알게 되면 설탕이 단 이유도 알게 되고 세상 모든 문제의 모든 원인을 다 알게 된다. 하나를 알려주면 백을 알게 된다. 우리는 가급적 문제를 키워서 근본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근본은 에너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공이 구르는 이유는 거기가 내리막길이기 때문이다. 공탓이 아니다. 둥글어서 그렇잖아 하고 멀쩡한 공을 네모지게 깎으면 곤란하다. 우리는 세상의 진보라는 거대한 관성력 안에서 호흡하고 있다. 문명의 진보가 경사를 만들어 세상을 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진보가 싫다면 태양을 추방하고 지구에 에너지 공급을 끊어버리면 된다. 쉽잖아. 보수는 태양을 혼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만만한 노무현만 때리고 있으니 비겁한 거다.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태양을 매우 쳐라! 진리를 매우 쳐라!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사람들은 진실한 답을 싫어한다. 태양을 칠 수 없으니까.


    만만한 답을 찾는다. 만만한 넘은 중간에서 개입하여 영향을 준 것들이다. 내 아들이 공부를 못하는 건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친구만 못 만나게 하면 돼. 내 딸이 저러는 건 남친을 잘못 만나서. 이런 식이다. 물론 중간에 옆에서 개입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중간적 원인이지 근본된 원인은 아니다.


    이 논의의 본질은 우리가 보통 습관적으로 중간에 옆에서 개입한 제 3자의 작위적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타성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편하고 알아듣기 쉽지만 원인의 일부일 뿐 사건의 전모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의 전모는 언제나 에너지를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시스템까지 가지 않으면 답을 찾은 게 아니다. 사건의 방향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답을 찾은 게 아니다. 경사져 있다. 문명은 진보로 경사진다. 축구장은 기울어져 있다. 언제나 진보가 이기도록 되어 있다. 물론 끝까지 가야 진보가 이긴다. 우주는 궁극적으로 한 방향으로 수렴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큰 틀을 봐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7]수원나그네

2019.04.11 (11:28:34)

"그러므로 우리는 가급적 문제를 키워서 근본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근본은 에너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5]챠우

2019.04.11 (14:10:52)

본문과는 좀 방향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형용사(동사)와 부사를 사용하는 습관을 보면, 인간도 사실의 중첩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사의 영어 이름이 adverb죠. verb에 무엇이 부착된 것입니다. 반면 副는 second라는 의미를 지녀서 번역이 좀 어색합니다. https://www.etymonline.com/word/*ad-#etymonline_v_52712


보통 부사는 동사, 형용사, 동사구, 문장 전체를 수식한다고 하는데, 그냥 동사를 수식하는 거라고 퉁칠 수 있습니다. 문장은 동사 하나로 압축할 수 있고 형용사는 동사의 한 종류이고, 구는 안긴문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한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가 adverb를 사라고 이름짓는 바람에 한국사람은 adverb의 본의를 알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짠 그것이 소금이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사람에게) 짠 그것이 소금이다"를 의도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에게) 엄청나게 짠 소금이다"라는 식으로 부사를 붙이면, 이 화자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형용사에 부사가 붙었다는 것은 그 형용사를 비교했다는 것이고, 비교했다는 것은 "덜 짠 소금"이라고 말 한 사람을 전제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즉 동사가 문장 하나를 압축할 수 있듯이 부사를 사용하면, 전제된 문장을 압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맥락으로 보면 접속사(영어권)와 접속부사(한국어권)를 헷갈리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접속사는 동사 혹은 전치사의 문장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사도 문장간 형용사(혹은 동사)이므로 접속사와 부사는 포지션이 겹칩니다. 그래서 접속부사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접속사는 동사 혹은 전치사의 문장간 버전 > 접속사는 문장을 주어와 목적어로 한, 더 높은 차원의 문장에서 동사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


동렬님이 책 '구조'에서 밝히셨다시피, 언어는 중첩, 중첩의 중첩, 중첩의 중첩의 중첩이므로 쌍, 쌍의 쌍, 쌍의 쌍의 쌍이라는 구조를 반영하여 품사가 이름지어진다면, 설명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kilian

2019.04.11 (14:47:51)

"우주는 궁극적으로 한 방향으로 수렴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큰 틀을 봐야 한다."

http://gujoron.com/xe/1079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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