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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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36 vote 1 2019.03.17 (19:45:50)

      
    예수 마르크스 샤르트르 까뮈


    현실의 권력구조가 문제.

    

    예수는 말하였다. '구원받고 천국 가라.' 마르크스가 화답했다. '혁명 받고 유토피아 가라.' 그런데 말이다.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천국은 있는가? 유토피아는 있는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나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유토피아를 꿈꾸는 마음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상은 공유된다. 공유에 가치가 있을 뿐 그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중요한 게 아니다. 한때는 독립이 우리의 이상이었고, 또 한때는 민주화가 우리의 이상이었고, 지금은 남북통일이 우리의 이상이 되는 것이며, 차별 없는 세상이 우리의 이상이 되어야 하듯이 이상은 끊어지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무리가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며 집단이 보조를 맞추어 어깨동무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 어우러짐이 중요하다. 유토피아는 끝이다. 끝은 북극성이다. 무리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려면 끝을 가리켜야 한다. 유토피아는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는 수단일 뿐 현실에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현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답은 공허한 판타지가 아닌 절절한 인간의 삶 안에서 찾을 일이다. 그러므로 샤르트르는 말하였다. 우리가 함께 같은 길을 간다면 그것이 곧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겠는가? 어떤 완벽한 꿈의 사회에 도달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같은 꿈을 꾸며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이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 까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우리라고? 우리는 쉽게 말하곤 한다. 우리 인류. 우리 민족. 우리나라. 우리 편. 우리 식구. 우리들. 그런데 과연 세상에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진정 우리라는 게 있나? 이제 진실을 말하자. 천국은 없다. 유토피아는 없다.


   천국이든 유토피아든 있는 게 아니라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세상을 꿈꿀 때 그들은 동료가 되는 것이며 실상 인간에게는 천국이 아니라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이상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사회가 있다면 인간은 거기서 전진을 멈추게 된다. 도전이 멈추어질 때 인간은 죽는다. 호흡을 멈출 때 생명은 죽는다. 


    진보를 멈출 때 문명은 죽는다. 그러므로 계속 가야 한다. 환경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이 있을 뿐이다. 집단과의 긴밀한 호흡이 있을 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적인 사회 따위는 없다. 행복이 넘치는 꿈의 사회는 없다. 이밥에 고깃국 같은 것이 있으면 안 된다. 이상은 상대평가일 뿐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면 안 된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야 한다. 어디에 도달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의 흐름을 연결하여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이라는 마약에 취하지 말라. 우리는 그저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한배를 탄 동료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의기투합에 도원결의하고 당당하게 나아갈 뿐이다. 


    그럴 때 떳떳하다. 그러한 만남 앞에서 인간은 전율한다. 그것이 전부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은 운명적인 만남이다. 만나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정상은 거기에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언제라도 이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정상이 고정된 어떤 조건이면 안 된다. 풍요가 넘치고 물질이 분배되는 아름답고 화려한 그런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이상은 굳이 말하자면 교통수단이며 소통수단이기도 하다. 만나려면 교통수단이 있어야 하고 만나서 통하려면 소통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차별주의라는 이름의 방해자를 제거해야 한다. 


    과거라면 언론이 있고 방송이 있고 우편이 있고 전화가 있으니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도로가 있고 철도가 있고 자동차가 있으니 약속장소에 나타날 수 있다. 교보문고 아니면 종로서적 앞에서 주로 만나곤 했다. 지금은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는 곳은 없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연락이 가능하다.


    까페에 가서 자리 잡고 기다리면 된다. 교보문고 앞이 한산해진 만큼 골목에 까페가 늘어났다. 이상의 문턱은 낮아졌다. 만남의 확률은 올라갔다. 에베레스트산을 더 쉽게 등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정상의 정복이 목적이 아니라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만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무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므로 모두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진정으로 만날 수 있을까? 속셈 없이 타산 없이 사랑 없이 희망 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의 전제가 있다. 우리? 우리라고? 누가 우리래? 우리가 뭐지? 언제부터 우리였지? 까뮈가 치명적인 질문을 던져 버렸다. 차별의 본질을 건드렸다.


    미국도 우리고, 일본도 우리고, 북한도 우리인가? 중국도 우리고, 흑인도 우리고, 백인도 우리고, 성소수자도 우리인가? 가족은 확실히 우리다. 아니다. 그 또한 동물의 생존본능에 불과하다. 우리라는 것은 말하자면 게임의 규칙 같은 것이다. 우리는 게임 속으로 초대받은 존재다. 게임 안에서 역할을 얻어 우리가 된다.


    그런데 나는 초대받은 적이 없는데? 왜 나를 불러주지 않았지? 이방인의 심리다. 그렇다. 우리를 부정하고서야 진정한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다. 남남이다. 타인이다. 가족도 남이고 형제도 남이다. 인정해야 한다. 일대사건이 아니면 안 된다. 적이 침략해 왔을 때 복종한 자는 사마리아인이다.


    광야로 도망친 사람은 유대인이다. 그들이 우리다. 동질성을 획득하는 절차는 반드시 밟아야 한다. 광야로 도망쳐 거기서 만난 것이며 만나서 우리가 된 거다. 독립군은 만주로 도망쳐서 거기서 만나 우리가 되었다. 박정희 억압에 도망치지 않고 이명박근혜 퇴행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한 사마리아인은 우리가 아니다. 


    사건이 있어야 한다. 일대사건 속에서 토대의 공유를 확인해야 한다. 적의 침략에 맞섬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토대를 공유하고 우리가 된다. 청나라 침략에 고개 숙여 복종한 자, 일본의 지배에 고개 숙여 복종한 자, 독재자의 억압에 무릎 꿇고 복종한 자, 남의 나라 성조기 깃발 흔드는 사마리아인은 우리가 될 수 없다. 


    이제 진실을 말하자. 천국은 없다. 유토피아는 없다. 이상국가도 없다. 우리도 없다. 사랑도 없다. 나는 버려진 채 혼자다. 천국이든 이상이든 사랑이든 우리든 그것은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게임의 룰이다. 일대사건은 일어났다. 침략에 맞서면 쫓기게 된다. 포위되어 적과의 거리가 좁혀질 때 동료와 등이 맞닿는다. 


    체온을 나누게 된다. 그러한 운명적인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각자 초대받은 게임 속의 플레이어임을 각성할 때 의기투합하고 도원결의하여 비로소 우리가 된다. 꿈꾸어야 할 진정한 이상은 거기에 있다. 큰 뜻을 품고 큰 사건을 일으켜 함께 나아가는 큰길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우리가 되는 과정이 이상이다. 


    도둑들은 양산박에서 모두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양산박에서 따로 할 일은 없다. 도둑놈 주제에 송나라 지키는 애국놀이 하는 충의수호지는 가짜다.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서로 만나게 하는 철도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고 이메일도 있고 동호회도 있고 카페도 있을까? 만나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서 완성된다. 아기는 태어나는 즉시 우리가 된다. 귀여운 짓을 해서 우리아기로 합격되는 건 아니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된다. 아기가 부모를 승인하는 절차는 따로 없다. 눈을 맞추고 얼굴을 부비는 만남으로 완성된다. 이상은 만남에 있다. 이상은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사회가 아니다. 


    차별 없는 평등사회가 아니다. 저마다의 꿈이 이루어지는 아메리칸드림의 사회도 아니고 중국몽을 펼치는 중화주의 이상사회도 아니다. 남을 차별하는 자를 나는 차별할 것이다. 나는 행복보다 에너지를 택하고 존엄을 택할 것이다. 나는 적에게 복종하는 사마리아인에 맞설 것이다. 꿈의 실현보다 꿈의 공유가 더 중요하다. 


    맞서지 않으면 공유할 수 없다. 나는 내 안의 분노를 포기하지 않는다. 게임에 참여하는 자는 환영할 것이고 문간에서 얼쩡대며 빈정대는 자는 배척할 것이다. 참여하는 자는 동료에게 패스해야 한다. 팀플레이를 익혀야 한다. 동료를 존중할 것이며 방해자를 처단할 것이다. 나는 굽히지 않고 전진하기를 바랄 뿐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수원나그네

2019.03.18 (02:46:53)

'가자 가자 함께 가자 저기 건너편에 있는 언덕위로'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3.18 (03:02:03)

"나는 행복보다 에너지를 택하고 존엄을 택할 것이며 적들에게 복종하는 사마리아인을 차별할 것이다.  꿈의 실현보다 꿈의 공유가 중요하다."

http://gujoron.com/xe/1072286

[레벨:17]눈마

2019.03.18 (10:46:11)

예수와 맑스까지는 가보지 못했소.

하지만, 사르트르와 카뮈를 생각하면 우선 눈물부터 나오.  생의 절망뒤에 오는 환희.


19세기의 야만을 넘어 들어온, 20세기의 철저한 패배,

20세기 후반의 야바위 자유주의 후에, 

21세기 에는 철학은 무엇을 반박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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