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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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35 vote 0 2019.02.20 (15:23:51)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인생은 게임이다. 게임은 이겨야 한다.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36계 주위상은 최후의 계책이다. 아무 때나 도망치면 안 된다. 마음을 비우라거나 혹은 내려놓아라거나 하는 식의 말은 도망치라는 말이다. 그런데 따라잡힌다. 져놓고 이기는 정신승리 필요 없고 이겨야 이기는 것이다. 져놓고 이겼다고 선언하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 많다.


    내년 총선에 지든 말든 자신이 더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진보적이고 선명하게 말로 떠들었으니 됐다는 식이다. 그게 정신승리다. 비겁자들은 도덕, 명분, 윤리, 정의, 양심 따위의 언어 뒤에 숨는다. 그런데 낱낱이 따져보면 그게 동료와 비교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는 우월주의다. 콤플렉스를 들키니 자기소개다. 게임은 이겨야만 다음 판에 나설 수가 있다. 


    지면 무대에서 퇴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닥쳐! 패자는 발언권 없다. 이긴다는 것은 상황에 맞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북은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옷은 입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신발은 신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자동차를 사놓고 운전하지 못하면 패배다. 축구선수가 드리블 못 하고 공 뺏기면 진다. 지식은 아는 게 이기는 것이고 모르면 진 거다. 


   이긴다는 것은 성공이나 출세와 같은 어떤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기승전결로 이어가는 사건에서 중도탈락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어야 가능하다. 사건의 최종적인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정해진 목표나 소득에 도달할 이유는 없다. 합리적인 판단을 계속하여 에너지를 조달하고 흐름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창의적인 작품활동이라면 성과가 있었느냐와 별도로 맥락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작품이 시장에서 인정받았느냐와 별개로 다음 작품과의 연결고리가 되는지가 중요하다. 흐름과 트렌드와 유행을 따라잡아 시장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우러져 함께 가는 것이다. 무리 지어 큰길을 함께 가는 것이며 내게 떨어지는 이익은 중요하지가 않다. 


    주어진 상황을 이기려 하지 않고 행복, 성공, 평판, 지위,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목표에 집착하므로 오판하게 된다. 그런 추상적 목표들은 그저 지어낸 언어에 불과하다. 그냥 단어다. 실체가 없다. 실제로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목표, 계획, 야망, 양심, 도덕, 선악과 같은 관념이 아니다. 상황이 인간을 지배한다. 상황은 에너지를 태우고 있는 점이 각별하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한다. 에너지에는 에너지로 맞서야 한다. 상황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며 상황을 이기지 못하므로 망가지는 것이다. 비우라고 하고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그렇게 비우고 내려놓을 목표, 계획, 야망, 욕심, 탐욕, 의도 따위는 사실 가짜다. 존재하지 않는 거짓을 내려놓은들 의미가 없고 비워본들 의미가 없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마음을 먹고 마음을 써야 한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와야 한다. 내부에서 그 에너지를 통제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에너지는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나온다. 에너지는 무의식 형태로 집단에서 나온다. 무대 위의 배우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관객의 시선이다. 노동자에게 에너지를 밀어주는 것은 가족의 반짝거리는 눈빛들이다. 


    정치인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유권자의 열성적 지지다. 작가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독자들의 성원이다. 우리는 관계에 의해 긴밀하게 엮여 있고 연동되어 움직이며 그 팽팽한 긴장이 에너지다. 일이 망하는 것은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먼저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다만 수순이 있다. 인간은 자유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다양성으로 기운을 얻는다.


    다음은 얻은 에너지를 일부 양보해야 한다. 자동차를 획득했다면 다음 운전해서 전진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를 운전하면 기름이 소비된다.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자동차를 획득하는 것이 선이라면 기름을 소비하는 것은 악이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 움직인다. 자동차 획득이 진보라면 운행은 보수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진보가 있는 곳에 보수도 있다. 문제는 아끼다가 망하는 경우다. 자동차를 운행하면 망가진다. 그래서 차고에 잘 모셔놓는다. 내려놓아라거나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자동차를 운행하다가는 사고가 날지 모르므로 안전하게 차고에 모셔놓으라는 말이다. 바보다. 진보를 하면 반드시 역풍이 불고 보수가 곧 따라붙지만 그래도 우리는 진보를 해야하는 것이다.


    진보가 먼저 인터넷을 접수했는데 뒤늦게 보수가 가세하여 일베충 짓을 한다. 진보가 먼저 팟캐스트를 하니까 보수가 유튜브로 응수한다. 장군멍군으로 흐름을 이어간다. 보수는 절대 떼놓을 수 없다. 그래도 전진해야 한다. 단 이겨야 한다. 보수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식으로 가는 일각의 행동은 무개념 독선이다. 우리는 51 대 49로 보수를 이겨나갈 뿐이다. 


    선이 있으면 악이 따른다. 자동차는 선이지만 교통사고는 악이다. 자동차가 있는데 교통사고가 없겠는가? 선이 악을 이겨야 한다. 자동차 운행은 늘리고 교통사고는 줄여야 한다. 최저임금에 대한 찬반논란도 그렇다. 선과 악은 반드시 함께한다. 최저임금제의 선순환이 있고 부작용이 있다. 최저임금제의 선순환으로 반드시 따라붙는 부작용을 이겨야 한다. 


    최저임금제가 선이므로 됐고 부작용은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식은 고약하다. 문제는 흑백논리에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독선을 저지르는 경우다. 선에만 관심을 가지고 부작용에는 눈을 감는다. 파도가 거세면 배에 실은 짐을 바다에 던져 흘수선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눈을 감는다. 배에 짐을 싣는 것이 선이므로 바다에 버리는 악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거다. 


    배가 침몰하면 더 큰 악인데도 말이다. 이런 경우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악에 눈을 감고 선만 과시하려 한다면 초딩이다. 돌아가는 판도 전체를 감당해야 한다. 미국의 역사는 다양성과 획일성의 대결사다. 미국의 독립은 영국왕의 독재에 맞서는 다양성의 주장이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탄생은 그 다양성과 자유를 스스로 반납한 거다.


    이는 모순된 행동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 우리는 정부를 반대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했는데 왜 연방정부가 있지? 영국왕의 노예로 살다가 조지 워싱턴의 노예로 갈아타는 것이냐? 구악은 신악으로 대체해? 이 문제는 지금도 미국인들의 주요한 의제다. 미국사는 연방을 강화해온 역사다. 자유로운 프로테스탄트들이 자신의 자유를 조금 반납했다. 


    먼저 다양성을 얻고 다음 그 다양성의 일부를 반납하기다. 100의 자유를 얻고 다시 50을 반납해도 50이 남으면 우리는 그 길로 가야 한다. 그런데 선동하는 무리가 나서서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를 위해 싸웠는데 왜 우리가 애써서 얻은 자유를 반납하지? 연방정부 없애고, 주정부도 없애고, 각자 소총으로 무장하고 자기집만 지키자는 선동이 먹힌다.


    문제는 패배한다는 거다. 미영전쟁에서 백악관이 불탄 것이 그러하다. 상비군이 없는 미국은 민병대를 급하게 모아봤지만 이들은 죽어보자고 지휘관의 말을 안 듣는다. 자기 고향을 지키려고 싸우지만 다른 지역으로 가면 탈영하거나 약탈을 자행한다. 남의 동네 털어먹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얼굴 모르잖아. 상관없잖아. 문명인이 야만인으로 돌변한 거다. 


    안 그럴 것 같지? 당신도 그렇게 된다. 베트남 정글에 풀어 놓으면 야만인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패배한다. 전쟁에 이기려면 애써 얻은 소중한 자유를 반납하고 다양성을 반납해야만 한다. 자동차를 쓰려면 기름을 소비해야 하는 것과 같다. 진보와 보수의 관계도 같다. 진보는 밥을 짓고 보수는 밥을 먹는다. 진중권스럽게 말 잘하는 사람이 궤변을 구사한다. 


    밥을 가지려고 열심히 밥을 지었는데 먹어서 밥을 없애면 어쩌자는 거냐? 말은 그럴듯하지만 가짜다. 자유를 지키려면 일부를 반납하고, 양심을 지키려면 일부를 반납하고, 진보를 지키려면 일부를 반납해야 한다. 51대 49로 진보가 앞서면 된다. 다음 단계로 연결시켜 가면 된다. 선에는 항상 악이 따른다. 선이 악보다 조금 크도록 상황을 관리하면 된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먹고 마음을 쓰자.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나쁜 일이 안 생기지만 좋은 일도 생기지 않는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일로 나쁜 일을 이겨내자. 확률로 밀어보되 좋은 일을 51퍼센트로 하고 나쁜 일을 49퍼센트로 해서 판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구도를 무한반복하면 이겨있다. 


    게임의 통제가능성 안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적극 마음을 먹고 마음을 쓰는 것이 정답이다. 선과 악도 그러하다. 어차피 선악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선으로 친구를 사귀고 친구가 어긋난 길을 간다면 악으로 끊어야 한다. 선의 바운더리 안에서 제한되게 악을 운용해 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그러하다. 


    어차피 진보와 보수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보수정당을 완전히 제거할 것이 아니라 살살 달고 가면서 지속적으로 이겨야 한다. 태극기부대는 도움이 된다. 총선을 이기고 지방선거 이기고 대선을 이겨야 한다. 진보가 앞서가며 길을 열고 보수가 뒤따르며 실리를 챙긴다. 진보가 판을 짜놓고 그 바운더리 안에서 보수에게도 일감을 적절히 분배해줘야 한다.


    진보독식 독선은 위태롭다. 간발의 차이라도 진보가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상대적인 것이 그러하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한다면 행복으로 불행을 이겨야 한다.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다면 성공으로 실패를 이겨야 한다. 실패 없는 성공,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은 성공은 원래 없다.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재도전해서 성공으로 실패를 이기는 것이 바르다. 


    한 번 졌다고 주저앉고 포기한다면 지는 거다.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이기는 것이 정답이다. 성공을 51로 하고 실패를 49로 하여 판을 관리하며 선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이 주도하면 선순환으로 흥하고 악이 주도하면 악순환으로 망한다. 49의 부작용이 따라도 51의 선순환을 보고 정책을 밀어붙이되 운전을 잘하면 된다.


    선에 도달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서 사건을 다음 스테이지로 끌고 가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어차피 인류는 함께 가는 것이며 개인의 작은 승리들이 모여서 인류의 큰 흐름을 이루는 것이다. 명상한다고 앉아 있는 자는 고착된 선에 도달하려는 것이며 타인과 비교하여 자기가 더 낫다고 자랑하려는 것이며 큰 어우러짐을 깨는 배반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8]kilian

2019.02.21 (03:51:26)

"선에 도달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서 사건을 다음 스테이지로 끌고 가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 http://gujoron.com/xe/1064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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