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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662 vote 0 2019.01.21 (15:06:48)



    초인은 누구인가?


    인간은 신이 아니다. 빌런을 때려잡는 히어로도 아니다. 장풍을 날리지 못하고 축지법과 둔갑술을 쓰지도 못한다. 염력을 쓰는 재주도 없고 텔레파시도 없다. 백만 대군을 이끄는 영웅도 없고 이등박문을 쏘는 열사도 없는 21세기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공부하면 지식인이 될 수 있다. 말이 통하면 지식인이다. 생각이 통하면 지성인이다.


    지식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지성인은 특별하다. 명령을 알아듣는 사람이 지식인이라면 반대로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지성인이다. 지식인은 '기다려' 하고 지시하면 제자리에 앉아 기다릴 줄 아는 개와 같다. 그들은 훈련된 개처럼 시킨대로 할 수 있다. 단 누가 시켜줘야 한다. 우리는 골방의 창백한 지식인상을 알고 있다. 그들은 꼬장꼬장한 샌님이다.


    입만 열면 바른말을 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이명박의 집권을 받아들이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바른말을 하는 최장집과 같다. 잘 훈련된 앵무새처럼 말은 반듯하게 하더라. 지성인은 다르다. 지성인은 창의적인 사람이며, 전진하는 사람이며 변화하는 세태와 함께 나아간다. 시대에 뒤지지 않고 트렌드를 따라잡는다. 집단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지식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쓸모가 없을 뿐이다. 지성인은 지난 세기의 인물형이다. 그때 그 시절 혁명가도 많았고, 모험가도 많았고, 독립투사도 있었다. 그들은 마음속에 뜻을 품은 지사志士다. 지금은 뜻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혁명을 기다리는 봉건국가도 없고, 모험을 떠날 신대륙도 없고, 독립을 꾀하는 식민지 영토가 없으니지성인이 없어진 거다.


    그래서? 다들 포기했다. 혁명도 포기하고 영웅도 포기했다. 7급 공무원이 꿈이라는 오포세대다. 다들 나약해졌다. 에너지 낙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흥분하지도 않고 전율하지도 않고 나가서 놀지도 않는다. 연애도 하지 않는다. 베트남 젊은이라면 지역에서의 작은 1승이라도 밤새도록 난리법썩인데 한국의 젊은이는 그런 베트남을 멀리서 구경하고 있다.


    인간은 무리에 기여하여 무언가 할 수 있을 때 강력해진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약해진다.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앞서가도 따라오는 무리가 없다. 인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 막대기 하나를 들고 골목길을 지나가기만 해도 대여섯 명의 꼬마가 쫄래쫄래 따라왔는데 지금은 그런게 없다. 참새 한 마리만 잡아와도 다들 뒤집어졌는데 말이다.


    여전히 유효한 것은 초인이다. 초인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가슴에 이상주의를 품은 사람이며 완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완벽주의를 꿈꾸는 사람이다. 탐미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에너지를 품은 사람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며 사랑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초인은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성聖과 속俗을 뛰어넘는다는 니체의 말은 대중에게 아부하지 말라는 말이다. 성聖은 지도자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포즈이고 속俗은 지도자가 들키지 않으려고 감추는 모습이다. 단어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니체의 초인 개념과 다르다는 말이다. 니체는 그냥 해본 소리에 불과하다. 나폴레옹이 초인이라니 장난해?


    21세기다. 나폴레옹은 필요없다. 니체가 부정한 것은 종교의 영혼이나 철학가의 이데아다. 봉건 계급사회에 대중은 영혼의 급수를 올려야 했다. 귀족은 신의 은총을 입어 특별히 고귀한 영혼을 갖고 있으며 대중은 저급한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어졌다. 깊은 신앙심이나 끝없는 기도로 영혼의 급수를 올리면 된다. 은혜받는다는 말이 있는게 그런 거다.


    영혼장사가 먹히지 않으니 대타로 내세운 것이 이성이니 이데아니 하는 철학가의 관념이다.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에서 하라는 기도를 해서 영혼의 급수를 올려야 하나? 아니면 칸트의 가르침을 따라 이성의 급수를 올려야 하는가? 이데아를 순정품으로 구비해 두면 좋아지는 거라도 있나? 장풍도 없고 초능력도 없는 시대에 무엇을 추구할까?


    종교인의 언어는 인간의 사회적 본능을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것이다. 철학가의 말은 종교어를 번역해놓은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 집단의 중심을 향하므로 종교인이 영혼, 구원, 천국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대체할 필요로 이성, 깨달음, 이데아 따위가 있다. 답은 현실에 있다. 환경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에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있다. 에너지에 있다.


    우리는 종교와 철학을 부정할 수 있지만 타고난 본능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랑을 부정할 수 없다. 에너지를 부정할 수 없다. 완전성을 부정할 수 없다. 미학을 부정할 수 없다. 초인을 부정할 수 없다. 초인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김기덕은 얄궂은 옷을 입고 명품 신발을 빠개 신으며 뭔가 지식인 흉내를 내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꼴이 우습게 되었다.


    진중권은 지식인이지만 앵무새다. 대중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남의 벌여놓은 일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며 관전평이나 쓸 뿐 자신이 리더가 되어 대중을 이끌지는 못한다. 지성이 없다. 그들은 각자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초극하지 못했다. 초인은 그 한계를 뛰어넘는 노무현이다. 대중의 뜨거운 마음과 지식인의 차가운 눈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초인이다.


    콜롬부스는 금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을 뿐 자신이 신대륙에 도착한 사실을 몰랐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달한 청교도들도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왔을 뿐 야심이 없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박항서와 히딩크는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시킨 것이다.


    내세도 없고 천국도 없고 영혼도 없다. 이성도 필요없고 이데아도 필요없고 깨달음도 필요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있고 자연의 미학은 있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고 자연에 완전성이 있다.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는 성과 속을 넘는다. 도덕률로 나타나는 집단의 욕망과 권력의지로 나타나는 개인의 희망을 넘어 결대로 간다. 제 자신의 방향대로 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1.22 (04:11:03)

"도덕률로 나타나는 집단의 욕망과 권력의지로 나타나는 개인의 희망을 넘어 대로 간다."

http://gujoron.com/xe/1055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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