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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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74 vote 0 2018.12.31 (19:29:49)

      
    삐딱하게 살자


    무소유를 주장한 법정도 잽싸게 무소유를 소유하는 영특함을 보이고 있다. 무소유조차 버려야 참된 무소유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 참 삐딱한 사람일세’ 하고 이맛살을 찌푸릴 법하다. 그렇다. 나는 원래 삐딱한 사람이다. 옛글을 봤더니 더 삐딱한 이야기도 썼더라.


    옳은 것은 옳은 것이 아니고, 공정한 것은 공정한 것이 아니며, 불편부당한 것은 불편부당한 것이 아니며, 바른 것은 바르지 아니하다. 중용은 중용이 아니며, 옳은 것은 심히 그르다. [명상록 게시판에서]


    20년쯤 지난 글일 텐데 옛날부터 삐딱했던 거다. 왜 삐딱한가?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니라는 느낌이 딱 들잖아. 주어가 아니라 술어이기 때문이다. 소유든 무소유든 술어다. 문제는 주어에 있다. 술어는 일단 가짜다. 들추어야 할 숨은 전제는 주어에 감추어져 있는 법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구인들처럼 소유하려 들지만 말고 동양인의 지혜를 찾아 존재를 추구하라는 말씀인데 시시하다. 존재해봤자 등신불이기 다반사다. 존재해서 뭐하게? 탐미주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를 소유하려는 야망을 포기하지 마라.


    단, 그 미가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는 아니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인 매력이나,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아름다움이나 둘 다 쓸데없다. 거울이나 쳐다본다면 곤란하다. 미인과 사귄다거나 미술품을 구입한다거나 비싼 옷을 사 입는다는 식이라도 곤란하다. 다른 거다.


    그 미가 그 미가 아니잖은가? 눈으로 보면 미가 아니며, 마음으로 느끼면 역시 미가 아니다. 미는 자연의 완전성에 있는 것이다. 늘 그러하듯이 말이다. 좋은 패션,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음식은 참된 미에 대한 감각을 훈련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미는 자연의 완전성에 깃든다.


    미는 완전성이다. 완전하면 통한다. 그것이 전부다. 예쁘면 통할 확률이 높다. 예쁜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이 말을 건넨다. 심지어 거지가 구걸을 해도 미남 거지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리더라는 내용의 TV 방송도 있었다. 겉보기로 예쁜 것만을 추구한다면 당연히 미가 아닌 것이다. 


    통하는 것이 미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도 통하지 않는다. 함께 해야 통한다. 에너지의 흐름에 올라타야 통한다. 에너지를 보태줄 때 통한다. 정치는 표를 보태줘야 통하고, 사업은 자본을 보태줘야 통하고, 미는 에너지를 보태줘야 통한다. 참된 미는 실천을 요구하는 거다.


    말로 사랑한다면서 손잡기를 거부한다면 가짜다. 사랑한다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 미는 실천을 동반하는 물리적 현실이어야 한다. 커다란 에너지 흐름을 따라 함께 손잡고 나아가며 기세를 보태주는 것이 미다. 그러므로 나는 무수한 가짜들 사이에서 삐딱할 수밖에 없었다.


    미는 완전하다. 완전하면 통한다. 인간은 예쁜 것을 통해 통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기른다. 통하는 것은 대개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이 곧 통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 중에 통하는 것이 많지만 확률이다. 통해야 진짜다. 문제는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는 점이다. 


    진정한 것을 나타내는 단어는 없다. 그래서 무소유가 어떻고 아름다움이 어떻고 하며 돌려 말하는 것이다. 거지는 무소유로 살지만 진정한 삶이 아니고 미인은 아름답지만 진정한 삶이 아니다. 무소유와 미를 통해서 진정한 삶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는 있지만 방편에 불과한 거다. 


    보통은 자빠져 죽는데 앉아서 죽는 스님들이 있다. 좌탈입망이라고 하는데 서옹스님이 유명하다. 문제는 머리의 무게다. 머리가 무거워서 자연히 앞으로 쓰러지게 되어 있다. 머리를 뒤로 젖힌 채로 죽는 요령을 구사한다. 머리 좋네. 따지고 보면 좌탈입망도 기술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참 가지가지 한다 싶다. 앉아서 죽든 엎어져 죽든 죽는 것은 같은데 스님의 소유하려는 욕심이 끝이 없다. 보통은 제자들이 연출해주는 거다. 신도들 앞에 전시해서 시주받아야 하니까. 제자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그림 하나 만들어주고 떠나는 거다. 근데 표절이다. 


    개나 소나 닭이나 중이나 다 한다. 좌탈입망의 전통은 오래되었다. 당나라 때는 심지어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거꾸로 서서 입적한 스님도 있다고 한다. 아름답지가 않다.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은 결대로 간다. 결을 거스르면 역린처럼 아프다. 인간은 누워서 죽는 것이 자연스럽다. 


    소유가 나쁜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소유라면 오히려 긴밀해지는 것이며 풍성해지는 것이다. 남녀라도 서로 소유하려 할 때는 긴밀해진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침범이 된다. 타이밍이 맞고 분위기가 맞아져야 한다. 그럴 때는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명성을 얻으려면 어려운 목표에 도전해야 한다. 무소유는 어려운 목표다. 소유를 필요로 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이다. 법정의 무소유 선언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저작권 행사가 막힌 출판사다. 가족과 신도를 단속하기가 어려우므로 무소유는 어려운 목표가 된다.


    가족과 신도를 단속할 수 있는 대단한 권력이 법정에게 있다는 사실이 자랑이다. 남들이 재물을 소유할 때 법정은 대신 권력을 소유한다. 반대급부는 크다. 누구나 소유를 추구하니 소유를 반대하는 자가 큰 권력을 행사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삐딱한 사람이 권력을 얻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자식을 병원에 데려가니 안아키는 굉장한 권력을 얻는다. 모든 사람이 달 착륙을 믿으니 달착륙을 부정하면 굉장한 권력을 얻는다. 이런 식이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것을 뻔뻔스럽게 반대해야 권력이 생긴다. 좋은 아이템이 없을까? 맞춤한 것은 지구평면설이다. 


    이보다 더 옹골찬 어깃장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괴력난신의 한 가지 유형일 뿐이다. 제왕들은 거대한 무덤이나 궁궐을 남긴다. 법정은 명성을 남긴다. 무덤이나 궁궐은 비용이 들지만 대신 관광객이 찾아오고 명성은 비용이 절약되는 대신에 관광객이 없다는 점이 차별성이다. 


    완전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나를 배제하고 가리켜지는 대상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따라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맛있더라' 하고 나를 개입시키면 실패다. '짜장면에는 양파가 어울려' 하고 자체의 결을 따라가야 한다. 진정한 무소유는 나를 배제하고 그 자체를 완성시킨다. 


    예리함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소유해야 한다. 긴밀함을 소유해야 한다. 활발한 상호작용이라야 한다. 삶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밖으로 자기편이 되어줄 동료를 얻고 안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도구로 예리함을 품는 것이다. 그럴 때 완전해진다. 인간의 삶은 풍성해진다.


    꽃은 피어서 완전하고 동물은 달려서 완전하고 산 것은 호흡하여 완전하다. 문명은 진보해서 완전하고 인간은 소통해서 완전하다. 세상은 구조의 집합이고 구조는 연결의 링크다. 완전성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자연스럽게 기능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식만 낳아도 연결이 되었다.


    조상에서 후손으로 연결성공이다. 지금은 임무가 벅차다. 도무지 인간들이 말이 많아졌다. 개인의 부담도 늘어났다. 오른쪽과 왼쪽을 잘 살피며 더 많은 것을 연결해야 한다. 추임새 넣고 장단 맞춰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흐름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긴장타야 한다.


    소통의 도구를 품어야 한다. 감성의 예리함과 상호작용의 긴밀함과 문화의 풍성함을 갖출 때 삶은 피어난다. 그것이 미학이다. 지구는 중력이 당기고 삶은 미학이 당긴다. 지구 위의 무엇도 중력을 부정할 수 없듯이 삶 속의 그 누구도 미학을 부정할 수는 없다. 원초적 끌림이다.


    기꺼이 탐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부자들은 강박증에 시달리는게 보통이다. 이건희가 공기를 정화한다며 전기세를 매달 수천만 원씩 쓰는 것은 부자병에 걸려버린 증거다. 크게 망가진 거다. 탐미주의자이면서도 강박증 환자는 아니어야 한다. 탐미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 많다. 


    내가 보기에는 대개 강박증이다. 괜히 쓸고 닦고 옷을 빼입고 멋 부리고 화장한다고 탐미주의자이겠는가? 그것은 오히려 소통을 단절시킨다. 너무 깨끗하면 찾아오는 손님에게 부담을 준다. 그런 식이면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막힌 것이다. 진정한 미는 오히려 흐트러진 것에 있다. 


    일본식 정원처럼 잘 꾸며진 것은 전혀 미가 아니다. 매우 답답하다. 짜증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앉아서 죽겠다는 좌탈입망 집착도 강박증이다. 답답하다. 무소유를 실천하고야 말겠다는 집착도 강박증이다. 진정한 미학과 부자들의 강박증 사이에서 줄타기는 심심치 않을 것이다. 


    진실한 삶은 그 어딘가에 있다. 찾아야 할 삶의 정수는 탐미주의와 강박증 사이의 아슬아슬한 어드메에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kilian

2019.01.01 (07:21:18)

"삶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밖으로 자기를 편먹을 동료를 얻고 안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도구로 예리함을 품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슈에

2019.01.01 (16:58:26)

새해를 맞이하는 데 딱 맞는 글입니다. 김동렬 선생님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시 한구절.

나무 그늘에 있는 아름다운 젊은이여,
네 노래는 멈추어지는 일 없고, 이 나무의 잎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아, 너는 결코 입맞출 수 없으리라.
목표 가까이 닿긴 해도 그러나 슬퍼 말아라.
너 비록 크나큰 기쁨을 얻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빛 바래는 일 없으므로.
영원히 사랑하라,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존 키츠,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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