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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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84 vote 0 2018.12.28 (11:32:39)

      
    감각의 날을 세워보자


    행복, 성공, 명성 이런 것은 뻘소리고 인간은 언제라도 에너지를 원한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그 무엇을 원한다. 긴장하고 몰입하게 하는 그런 것을 원한다. 에너지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누구든 사람과 친하고 싶은 것이다. 친하려면 무언가 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줄 것이 없다. 가진 것이 없다. 매력이 없다.


    능력도 없다. 사람과 친하지 못한다. 자연과 친할 수밖에. 혼자 노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저 남을 이해하는 방법뿐이다. 내가 당황할 때 상대방도 당황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적어도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 재빨리 적응하여 기세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정세를 파악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은 자신감에 넘친다. 어색해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가련하다. 무리 속에 섞여 자연스러워지려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그런 적응에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대인관계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분주한 발걸음 사이에서 슬그머니 하차해 버려도 좋다.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도 좋다. 진실한 삶은 환경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에 있다. 새벽공기와 아침공기와 점심 무렵과 오후 그리고 저녁공기의 맛깔이 다르다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한밤의 젖은 공기도 다르다. 기압의 차이에 따른 느낌의 변화가 즐거워야 한다.


    강박적으로 예민해지면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숨긴 무사처럼 든든해지는 것이다. 미식가는 혀를 단련시켜 미세한 맛의 차이를 분간할 수 있고 음악가는 귀를 단련시켜 멀리 떨어진 다른 방에서 진동으로 울리는 스마트폰을 알아챈다. 나는 둔한 혀와 막귀를 가졌지만 대신 공기의 때깔을 느끼는 뺨의 솜털을 가졌다.


    발가락 사이로 삐져 들어오는 차가운 진흙의 느낌이 좋다. 뼈가 시릴 정도의 찬물 속으로 들어가면 몸속에 단단한 것이 만들어진다. 타오르는 모닥불의 느낌도 좋다. 참나무 낙엽과 소나무 낙엽의 서로 다른 연기의 맛깔도 음미할 만하다. 내밀한 질서가 있고 규칙이 있고 맞대응이 있고 상호작용이 있고 존중이 있다.


    새벽 공기의 설렘은 언제나 좋다. 자연과 친하는 방법을 알면 사람과 친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자연은 좋고 싫고가 없다. 높은 절벽이나 우거진 숲이나 맑은 강물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대응할 뿐. 긴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내밀한 속삭임을 내가 들어내는지다. 대화는 풍성해야 한다.


    인간 세상이 만만하게 보일 때까지 능선을 따라 걸어가 보는 것도 좋다. 풀과 벌레와 낙엽과 가시와 흙과 먼지와 황폐함과 무성함과 더 많은 이야기 속으로. 나 빼고도 핑핑 잘만 돌아가는 세상에 기죽지 않으려면 말이다. 특별히 감각이 예민한 사람도 있을 터이다. 둔한 감각에 날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에너지를 얻는다. 모든 친구를 잃어도 마지막 친구가 있다. 벼랑에 몰린 기분이 들 때 산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고라니와 노루와 멧돼지와 족제비와 너구리와 오소리와 담비가 추운 그곳에 있다. 동료들이 있다. 줄 것이 있어야 한다.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 다 안 되면 마지막 수단은 예리해지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cintamani

2018.12.28 (12:53:33)

이것 저것 다 안 되면 마지막 수단은 예리해지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kilian

2018.12.28 (15:08:32)

 "에너지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누구든 사람과 친하고 싶은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슈에

2018.12.28 (17:58:48)

한 편의 시 같은 글입니다
[레벨:12]떡갈나무

2018.12.28 (23:48:20)

얼마나 많이 또 걸어야 할까요?
자연과 친하고 사람과 친해지려면은요~
또한 참나무와 소나무 낙엽의 연기가 주는 다른 맛깔 나도 한번 음미해보고 싶어집니다 ^^

동렬님의 살갗과 후각은 국보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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