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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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09 vote 0 2018.11.16 (11:46:48)

      
    김용의 영웅문


    파리는 새가 아니고 뽕짝은 음악이 아니고 이발소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무협지는 문학이 아니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은 통제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문학이 아니다. 독자가 개입하여 틀어버릴 수 있는 극적인 지점이 있어야 한다.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문학의 완성도를 판별하는 것이다. 


    그 통제장치는 대칭성을 가져야 한다. 서부극이라면 총잡이들의 대결이 있다. 총잡이 두 사람이 대로 가운데서 등을 맞대고 10보를 걷는다. 심판이 카운트를 세면 등을 돌리고 쏘는데 먼저 쏘아 맞히는 사람이 이긴다. 싸구려 소설 작가들이 꾸며낸 거짓이다. 실제 서부시대에는 그런 총잡이들 간의 결투가 없었다고 한다. 


    검시관이 조사해보니 그 시대에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등에 총을 맞고 죽었더라고. 결투는 19세기에 칼로 하는 것이지 총으로 하는게 아니다. 어쨌든 서부극의 흥행은 그런 긴장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무협지는 그게 없다. 산만해진다. 통제되지 않는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독자가 개입하고 싶은 특이점이 없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용은 화산소집을 쓴다. 화산논검이라 하여 예비군 소집하듯이 인물들에게 통지하는데 신기한게 연락만 하면 다들 화산으로 모여든다.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하며 다섯 방위 포지션을 정한다. 동서남북중에 각각 한 명씩을 배치하는 것이다. 논검이라고 하면서 검을 놔두고 맨손대결을 한다. 


    등신 짓거리를 하는 거다. 드래곤볼은 링을 쳐놓고 대결한다. 춘향전이라면 암행어사 출도가 된다. 모두 모이는 장소가 있다. 집결지가 있다. 보통은 결혼식장으로 모인다. 연애소설이다.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긴장된 의사결정의 지점이 있다. 무협지는 없다. 의사결정이 없다. 화산논검은 수법이 수호지와 유사하다. 


    108두령의 지루한 등장인물 소개가 끝나면 하나씩 둘씩 양산박으로 모인다. 그런데 클라이막스가 없다. 표자두 임충이 왕륜을 죽이고 양산박을 장악하는 장면이 준 클라이막스가 되겠는데 이후 늘어지다가 흐지부지된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모아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주인공은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지점은 약한 고리가 된다. 독자가 개입해서 주인공을 도와주고 싶은 상황이 된다. 모든 인물을 한자리에 모아야 한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주인공이 라이터를 손에 들고 모여있는 인물들을 위협하는 장면과 같다. 필자는 김용의 영웅문 1권을 절반까지 읽었는데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차라리 육법전서를 읽지.


    백과사전도 2/3는 읽었는데 영웅문은 내게 무리였다. 그렇지만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존중할밖에. 동양이든 서양이든 판타지는 나와 맞지 않다. 그래도 판타지는 확실히 에너지가 있다. 한국의 민화도 그렇고 산만하지만 에너지가 있다. 서유기나 천일야화가 그렇다. 소실점이 없다. 대칭과 축의 구조가 없다. 


    나열식으로 되어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으니 주제의식이 약하고 문학적 완결성이 떨어진다. 총은 있는데 방아쇠가 없는 셈이다. 그것을 한 방향으로 모아내야 풍성해진다. 한 지점에 모여야 외연을 얻게 된다. 조직도 지도자가 있어야 외교를 할 수 있듯이 민중이 그냥 모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를 무성의하게 나열하지 말고 99개 아이디어 중에 한 개의 진짜를 발굴한다는 자세로 마이너스를 행하여 옥석을 가려줘야 한다.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쓰레기 한류드라마처럼 뻔한 복수와 음모의 반복으로 가게 된다. 사실주의를 얻지 못한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100이라 치자.


    99를 놓치고 1에 오글오글 모이게 된다. 전쟁영화라면 사실주의로 갈 때 지형지물이나 이런 것에서 나올 수 있는 전술이 100가지일 때 무협지는 여래신장 하나로 획일화된다. 전술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강호의 고수라도 여래신장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점점 앙상해지고 만다. 김성모 만화처럼 똑같은 패턴의 무한반복. 


    서부극도 총잡이 대결이 없으면 허무한 거다. 그런데 그것도 알고 보니 꾸며낸 거짓말이더라. 어떻든 판정하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동양적 판타지인 무협지를 발전시키려면 그런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드라마든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든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조가 있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챠우

2018.11.16 (13:35:50)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어떤 시대나 상황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은 계와 계 아닌 것의 충돌에서 연역된 것이며, 그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고, 모인 사람은 많은데 길목을 지날 수 있는 구조는 단 하나 뿐이고, 하여 사람들의 시선은 일집중하고.


원펀맨만 하더라도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고, 그래서 그 외계인을 물리칠 지구 영웅들이 모였고, 외계인을 물리치는데 있어 외계인 눈깔을 찌를 놈, 바짓가랭이 붙들 놈, 똥침 노을 놈이 나뉘게 됩니다. 물론 원펀맨의 설정상 다른 놈은 별로 필요없다는게 한계이긴 하지만. 


그런데 드래곤볼은 천하제일무술대회를 여는 이유가 단순히 지구에서 가장 강한자를 고르기 위함인데, 가장 강한자를 골라서 뭐하려고? 그래서 뭐? 


판타지의 한계는 작가가 세계관을 설정하지 않고 마술 부리는 기교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어떤 세계를 창조해야 이야기가 시작되지, 기술을 말하려는 순간 망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왠지 판타지 하면 마술과 장풍을 써야할 것 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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