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리트윗

인도에서 왔다.

원문기사 URL : https://news.v.daum.net/v/20181104150213418?rcmd=rn&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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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렬  2018.11.04

인도 아요디아 

옆에 가야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독자적인 가야의 제철기술도 

졔철강국 인도 아니면 설명이 안됩니다.


한두 가지가 맞아떨어진다면 

우연의 일치로 치부할 수 있지만 


서너 가지도 아니고 일고여덟도 아니고 

열 가지 이상의 데이터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역사학계도 자존심을 굽히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원래 이런 민간어원설은 안 맞는다는 계몽주의를 고수하다가

중요한 것을 날려먹는 예가 많습니다.


이념이 있으면 고집을 피우는게 인간인데 

실증주의가 역사학계 이념으로 되어서 


환빠들과 투쟁하느라 회의주의적인 시선을 강조하다보니

오바가 심해져서 마침내 실증되는 것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1) 인도 아요디아 옆에 가야, 부다가야 등의 지명이 있다.

2) 만어사에 아랍에서 기원한 인도식 쌍물고기 디자인이 있다.

3) 파사석탑이 실물증거로 남아있다.

4) 허황옥은 중국식 이름인데 중국에도 인도에서 온 허황옥의 이주설화가 있다.

5) 불교의 포교 목적으로 외국으로 진출하는 인도 풍속이 있었다.

6) 인도는 전통적인 제철강국으로 흑해에서 바이킹들에게 철을 판매했을 정도이고 유명한 다마스커스검도 인도 남부지역의 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인도산 원광석이 없어서 재현이 안 된다.

7) 금관국 명칭은 철을 관리한다는 뜻인데 왜 선진기술을 가진 중국이나 북방 유목민과 거리가 먼 변방의 작은 나라인 가야가 철을 관리하는 높은 지위를 가졌는가 하는 문제가 해명되지 않았다.

8) 신라도 포항 흥해를 중심으로 일어난 제철집단인 석씨가 국가를 장악한 적이 있다.

9) 당시의 제철은 한곳에서 하는게 아니고 이리저리 산을 돌아다니며 철광석을 모아서 현장에서 철을 생산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라 가야가 지리산 넘어 남원까지 가서 제철활동을 했는데 이런 제철방법이 화산지대인 일본에서 통하지 않으므로 일본이 가야에서 철을 조달했는데 이 방법은 철과 목재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할 이유가 되므로 적절한 야철지를 찾아 한반도로 이동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10) 이동식 제철을 하려면 이동과 운반에 필요한 강과 산림이 필요하므로 섬진강과 영산강 및 낙동강을 낀 가야가 가장 적합하며 만약 다른 제철방식을 썼다면 가야가 아닌 백제나 신라가 철을 장악했을 것이다. 초기 가야는 영산강을 낀 전라남도 동편제 지역을 포괄한다. 

11) 영산강 일대에 일본인 거주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역시 화산지대 일본에서 철을 조달하지 못해 철의 확보 목적임을 알 수 있으며 전성기의 가야는 영산강 상류에서 남원, 장수까지 진출해 있었다.

12) 가야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붙인 것이며 가야는 나라이름이 아니고

가야는 구야국 금관국 다라국 안라국 탁순국 반파국 등 별도의 국명이 있는데 왜 이 지역을 묶어서 

가야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가 해명되지 않았다. 

13) 이들 가야 국가들은 서로 친하지 않고 반목했으며

가야연맹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각국이 신라와 백제에 붙어 경쟁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온 이주민 세력으로 봐야 가야라고 별도의 이름이 붙은 이유가 설명된다.


이상을 종합해 보건데 야철기술이 중국이나 흉노족 혹은 거란족을 통한 북방루트와 무관하게

인도에서 중국 남부지방을 거쳐 한반도로 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