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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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20 vote 0 2018.09.19 (14:46:57)

      
    비오는 날의 동화


    첫 장마비가 내리는 6월 말 풍경이 되겠다. 비가 내리면 논바닥에 살던 미꾸라지들이 상류로 이동하기 위하여 좁은 농수로에 모여든다. 꼬마들은 대나무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들판으로 몰려나와 미꾸라지를 잡는다. 밤새 비가 내린 다음날 논둑에 앉아서 이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다. 비가 그치지도 않은 이른 아침이다. 시내에서 승합차를 타고 온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커다란 반두를 들고 들로 나선다. 온통 수로를 틀어막고 미꾸라지를 양동이 단위로 쓸어담아 간다. 실망이 아닐수 없다. 비 그치고 뒤늦게 주전자 하나에 소쿠리 하나 들고 올 소년들은 미꾸라지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오후가 되자 비가 그쳤다. 그러나 소년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두어 명씩 몰려 온 사람들이 들판에 흩어져서 작은 반두를 들고 수로의 이곳저곳을 뒤져 양동이를 채워갔다. 그들이 온 들판을 헤집어놓고 돌아갔을 때 그 들판에 미꾸라지는 씨가 말랐지 싶다. 기다리던 소년은 그제서야 나타났다. 해는 서산을 넘어가려 하는 늦은 시각이다. 할아버지 손잡고 작은 소쿠리 하나 들고 온 소년이 과연 주전자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아침부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꾸라지를 쓸어갔는데 말이다. 나의 예측은 빗나갔다. 할아버지와 소년은 작은 소쿠리로 물꼬 몇 곳을 뒤지더니 금방 한 주전자를 채워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각자에겐 각자의 방법이 있었던 거다. 전혀 길이 없다고 여겨졌을 때도 뒤에 오는 이를 위하여 한 개의 길은 남겨져 있는 법이다. 승합차 타고 먼저 온 도시 사람들은 미꾸라지를 많이 잡아갔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뒤에 온 사람들 또한 적당한 양의 미꾸라지를 잡아갔다. 해질녘에 온 할아버지와 소년은 또한 세 식구 먹을 정도만큼 잡아갈 수 있었다. 각자 차별화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도구를 들고 서로 다른 교통수단으로 와서 목표로 삼은 양의 미꾸라지를 잡아간 것이다. 할아버지와 소년이 작은 소쿠리를 들고 저녁 늦게 들판에 나타났을 때 나는 그들을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소년과 할아버지는 그들만의 비밀장소를 감추기 위하여 모두가 돌아간 시점에 나타났던 것이다. 지금 농수로는 시멘트로 덮이고 미꾸라지 잡는 사람도 사라졌다.


    천재는 창의하는 사람이다. 창의는 간단하다. 차별화 하면 된다. 어떻게 차별화 할 것인가? 위에서처럼 도구와 장소와 시간대를 차별화 할 수 있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도구는 입자, 장소는 공간의 힘, 시간대는 운동에 해당된다. 여기에 량을 차별화를 추가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투입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 된다. 근본적인 차별화를 해야 한다. 수고하여 미꾸라지를 잡는 대신 이렇게 미꾸라지 잡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그것이 질의 차별화다.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이다.




   

  20년 전에 쓴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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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회사원

2018.09.19 (15:18:30)

입자 힘 운동 량 차별화 해봐야 껍데기고, 결국 최종적으로는 질이 차별화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질이 갖추어지면 입자 힘 운동 량은 죽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슈에

2018.09.20 (10:48:00)

생텍쥐페리가 이렇게 말했었죠.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9.20 (11:08:52)

칼럼에 써먹을만한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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